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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Nov 10. 2019

꿈이 명확했던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왜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묻는가

중학교에서 처음 받았던 상의 이름은 '나의 꿈 말하기 대회'였다. 중1이었던 나는 당시 꿈이었던 역사학교수가 되고 싶노라고 발표했고, 대상을 받았더랬다. 늘상 그렇듯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과학자(본인이 천생 문과라는 걸 모른 판단이었다)라거나, 대통령(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으니까)을 떠들어 댔지만, 초4때는 역사학교수라고 정해버렸었다. 집에 잔뜩 꽂혀 있는 역사책이 재밌었고,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 대학생을 상대로. 그 때 나는 대학생을 상대로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낭만이 있었더랬다.


그 꿈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당당히 역사학교수를 써내곤 했으니까. 나름 역사에 대한 지식도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었고, 골든벨을 비롯한 퀴즈 프로그램의 문제들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깨달았다. 생각만큼이나 역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고 재밌어 한다는 것, 역사 점수로 평가를 받을 때 최상위권이 되지도 못한다는 것. 그리고 뭔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지나간 일을 다룬다는 건 뭔가 고리타분해보였고, 교수라는 직업에서 생동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바꾼 꿈은 PD였다. <다큐멘터리 3일> 같은 다큐를 만드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고도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고 싶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온갖 분야에 지식을 넓힌 아이는 그걸 떠들어대고 싶어했고, 언론인은 적합했다. 게다가 글 쓰는 것도 좋아했으니, 드디어 천직을 찾았노라 싶었다. 영상편집이라고 해봐야 윈도우 무비메이커를 돌려본 것이 전부겠으나, 고등학생이 PD를 꿈꾸는 데 그러한 자격까지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고등학생 기자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글을 인정받아 기자를 만나고, 라디오 출연도 하며 단꿈에 부풀었던 것 같다. 언젠간 PD가 될 자신을 보며. <PD 저널리즘>이라는 책을 읽으며 뽕(?)에 취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 땐 <PD수첩>을 비롯한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던 시기기도 했다.



시나브로 PD는 기자로 바뀌었다. 이유는 여럿 있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늘어나는 건 이유이자 핑계였다. 영상보다는 글에 맞는 사람이었고, PD는 기자보다도 적게 뽑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하려면 관심없는 프로그램들도 맡아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10년 간은 골방에 갇혀서 편집만 해야한다는 이미지도 한 몫 했다. 나는 언제나 뛰어다니는 역동적인 사람이고 싶었지, 새벽을 어두컴컴하고 좁은 방에서 보내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20대 어느 시절엔가 내 꿈은 PD에서 기자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별 일은 아니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어차피 언론인이었고, 내가 생각할 때도 그랬다. 오히려 예전부터 글을 써왔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심 'PD보단 기자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나 보군'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여전히 글을 썼다. 20대 미디어에서 글을 썼고, 곳곳에 기고를 했고, 독립언론을 만들기도 했다. 복수전공으로 신문방송을 택했고,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20대로서의 내 삶은 기자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으레 주변에서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해서 좋겠다"고. 난 그 때마다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꿈이 없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거나 한 적은 추호도 없지만, 난 꿈이 명확한 내가 좋았다. 결국엔 인턴기자까지 했으니, 남들이 보기에 나는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사람이었을 게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자가 아니다. 언론인도 아니다. 언론사에 있지도 않다.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다르다면 아예 다른 광고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썩 마음에 든다. 신문방송학을 복전하며 들었던 광고 수업이라고 해봐야 절반은 졸았던 <광고론> 뿐이지만(이상하게도 점수는 잘 나왔던 것 같다), 어느샌가 내가 광고를 꽤나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남들보다 색다른 광고를 많이 알기는 했지만, 광고홍보학과를 다닌 학생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을 것이고, 광고 지식이라고 해봐야 일천했던 내가 짧은 시간 동안에 광고업을 긍정한다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18살부터 최소 8년 간은 기자를 꿈꿨지만, 기자를 포기한 삶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나름 기자를 준비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 둘 기자가 된 지인을 보면서도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들 뿐, 내가 기자가 아니라서...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것 역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기자라는 직업에 실망한 것도 있었고, 내가 기자와 맞지 않는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의 언론환경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다. 더해서, 언론고시를 준비할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서류가 붙어 쳤던 시험을 보고나서 깨달은 것은, 나는 이런 시험을 준비할 만한 사람은 못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을 투자할 현실적 여유도 없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단순 암기를 하고는 운에 기대야 하는 시험에 인생을 걸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그 이후 과정을 뚫고 나갈 자신도, 기자가 되서 버텨야 할 어려움도 원치 않았다. 주변의 언시생에 비해 나는 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 부지런한 편도 되지 못했다. 수습기자 동안 잠을 3시간만 자면서 하루를 보낼 체력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쓰고 싶지도 않았고,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세상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목소리가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약자들의 삶을 다루고 싶었고, 보잘 것 없는 글 솜씨로나마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남긴다면 어려운 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겠노라고 생각했다. 비록 몇 년 간 기자를 하다가 이직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고 세상에 전해서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설레곤 했다. 그 마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인턴기자를 하며 청소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다뤘을 때 느꼈던 행복감, 인터뷰를 마치고 작은 음료나마 선물하는 것이 전부였던 자신에 대한 아쉬움, 화제가 된 기사를 보며 드는 뿌듯함,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서술할 때의 희열. 생각만으로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이지만, 나는 안다. 그런 순간만을 겪는 기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거칠 수 없다는 것, 그런 기사를 쓰기엔 우리네 언론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나쁜 기사'를 쓰는 '나쁜 기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내 기사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걸 배운 순간,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나 정의로운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쓰지 말아야 할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기사를 쉽게 쓰기 위해 편법을 쓰지는 않겠는가.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가능성을 쥔 사람이 되기에 나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인가. 나는 때로 비겁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내가 정말로 좋은 기사만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


그 어느 것에도 답하기 쉽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기자라는 꿈을 접었다. 인턴기자를 마치고 마침 나는 아팠고, 건강을 되찾고, 남은 학기를 다니면서, 기자가 아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자가 될 자신도, 좋은 기자가 될 자신도 없기에, 다른 직업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관심분야가 많아 그 모든 걸 다룰 수 있는 기자가 되길 원했던 거라면, 그 다른 직업을 가져도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나쁜 기자가 되느니 기자가 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나보다는 조금 더 언론고시를 준비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맞다고, 사실 나는 별로 기자랑 맞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민 인터뷰를 할 때도 고역스러웠던 내가 얼만큼 묻혀진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며, 겁을 내고 비겁한 내가 어찌 권력자에게 당당히 반기를 들 수 있을 것이며, 선배가 나쁜 기사를 요구할 때 거부할 수 있을 것이며, 언론고시 준비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은 내가 어찌 그 지난한 과정을 뚫을 수 있을 것인지. 


놀랍게도, 8년 간의 간절한 꿈을 포기하는 건 꽤나 쉬운 일이었다.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고, 슬프지 않다. 도리어 그 꿈을 포기한 내가 대견하다.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면접을 볼 때면 "기자를 준비했었는데 왜...?"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지만(애초에 그 이유로 면접에 가지도 못하기도 했으리라),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나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내가'라고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나올 뿐이다. 세상 일은 정말 모르는 거라고. 그 누구도 내가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상상하진 않았을 텐데, 나는 광고를 다루게 됐다. 그리고, 그게 꽤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꿈이 명확하다며 뿌듯해했던 나는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왜 꿈을 가지라고, 어린 시절부터 꿈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걸까. 물론 그것이 직업과 동일시 할 수 없음은 안다. 하지만 난'사람들에게 역사를 알리고 싶다'란 마음으로 역사학교수를 꿈꿨고, '사람들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란 마음으로 PD와 기자를 꿈꿨기에 그 둘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하는 걸까. 또래들 중 누구보다도 어릴 적부터 꿈을 가지고 추구해왔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던 나도 결국 그 꿈을 접었고 다른 길로 가는 자신의 삶을 만족한다면, 우리는 꼭 꿈을 정하고, 어느 직업을 가지겠노라고 어린시절부터 준비할 필요가 있는 걸까. 


답은 '그렇다'였다. 기자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걸어왔던 길이 무의미하진 않다. 난 저널리즘을 고민했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썼다. 글이 쓰는게 좋아서 썼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것을 배웠고, 나 자신에 대해 배웠다. 역사학교수를 꿈꿨기에 내가 사실은 역사를 그렇게까지나 좋아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기에 나는 공부와 그렇게 맞지 않는 사람이란 것도 깨달았다. 원하는 꿈과 장래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고 달려올 수 있었다. 비록 그 길로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지나온 길은 내 삶 구석구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팩트체크를 하는 습관이 남아서 일단 잘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관계부터 따지고 본다. 괜히 대화를 망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좋은 습관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그런 내가 썩 싫지는 않다. 어쨌거나 글을 쓰는 습관은 남았고, 짬이 날 때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자신이 좋다. 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했기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꼭 무언가가 남았기에 무의미하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목적지를 알고 걷는 사람은 그 길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이 길을 왜 걸어야 하는지를 물을 것이고, 일단 걷겠다고 몸을 일으켜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없어도 좋다. 나는 왜 되고 싶은게 없는가라고 생각해도 전혀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삶은 불규칙적이고 예측할 수 없으며, 어느 길에서 어떤 삶을 살게될 지는 조금도 맞출 수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매 순간 진심을 다하고, 매 순간마다 하고 싶다고 판단하는 일을 좇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걷기 시작한다면, 어느 길이든 당도해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꿈이라는 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우리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어디로 가야할지 끊임없이 물으며 성장하는 존재일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된다면, 난 묻게 될 것 같다. 너는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좋아하는 건 무엇이냐고. 너가 기쁘고 설레는 순간은 언제냐고. 없다면 그렇구나라고 할 것이고, 있어도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기를 응원하고 싶다. 어디로 향하는 길일 지라도, 간만큼 돌아오게 될지라도, 그 길에서 쓰러질지라도, 삶이란 건 꿈 그 자체이며 꿈보다 소중한 것이기에, 꿈을 좇되 꿈에 매몰되지 않은 채 당당히 걸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길로 향하든 괜찮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묻고 싶다. 


내가 배운 건, 꿈이나 장래희망 자체가 끝은 아니다. 삶이 여행이라면, 꿈은 중간에 방문하는 수많은 공간들일 것이다. 그 도시를 가기 위해 수많은 여정을 거치겠지만, 그 도시에 도착했다고 해서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웃고 울고 기뻐하며, 또 다시 발을 옮길 것이다.


나는 언제나 다음 목적지를 향했지 페달을 거꾸로 되밟지는 않았다. 그렇게 페달을 밟는 동안에 감사하고, 미안해 하고, 화해하고, 어울려 기뻐하는 모든 감정들이 잠시 불꽃처럼 일어나서는 내 가슴 한 쪽에 소리 없이 파묻혀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의외로 무미건조해졌다. 고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바퀴로 유럽지도를 그리다>



여행이라는 건 끝이 나게 마련이다. 다만 그 끝은 어느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의 끝은 돌아옴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다만 돌아온 뒤의 나는 그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수많은 꿈이라는 중간 기점들을 거치고 난 뒤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1년 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는 원래 있던 곳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른다. 삶이라는 여행 끝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많은 곳을 거치며, 언젠가 돌아갈 그 자리를 향해 걸을 뿐이다. 내 삶의 목적을 꿈으로 한정하지 않기로 한 순간, 삶을 살아가는 건 조금 편해졌다. 그저, 여행을 즐기다가, 돌아온 내게 무엇이 남아있을지를 확인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남은 것이, 바로 내가 살아온 목적일 테니까. 하지만 물을 것이다. "넌 어디로 가고 싶니?", "넌 다음엔 어디로 가니?". 수많은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에게,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듯이. 어디로 가든 그렇구나고 할 것이고, 가지 않고 여기서 머물 예정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할 것이다. 


엇갈려가며 잠시 마주한 그곳에서, 서로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응원하듯이, 나 역시 그렇게. 내가 가고자 했던 곳에 가지 못하고 다른 여행지로 간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는 않는다. 삶이 끝나는 건, 그 모든 여행을 마친 뒤다. 그 때까지 내게 남은 건 매 순간 마주하는 여행지를 즐기는 것 뿐이다. 그것이 꿈이 내게 가르쳐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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