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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Dec 12. 2021

디테일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가 필요할 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리뷰


아래 글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 Wavve Original)의
스포일러 및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편이 아니다. 1년에 1개 정도 보려나. 

안 보던 습관이라 보는 것이 익숙지 않기도 하고,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집중해서 보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드라마에게서 '끌린다'라는 느낌을 받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은 주변의 호평에서 한 번, 정치 블랙코미디란 장르에서 두 번 끌리게 되어 보기 시작한 드라마다. 


메인 예고편


이 드라마가 특이한 점은 1)웨이브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점 2)보기 어려운 '정치' '블랙 코미디' 장르라는 것. 웨이브 유저이면서도 웨이브 오리지널엔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를 쉽게 보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다. 블랙코미디를 내세우는 드라마가 잘 없기도 하고.


드라마는 편당 30분 가량, 12회로 이루어져 있다. 전개속도가 빠르고, 수많은 사건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드라마 후반에 가게 되면 전반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까맣게 잊혀질 정도다. 이를테면 문체부 차관자리를 꿈꾸는 기재부 출신 공무원이 현장에서 짤리는 일이라든지하는 것들. 


제목은 대부분 떠올리는 대로, 이말년의 만화 대사에서 따왔다. 이말년 작가 초창기의 '병맛'을 드러내는 대사였고, 여러 해 동안 밈으로 활용되어온 문장이다. 이 문장이 고스란히 제목에 반영된 것은 꽤나 적합한데, 스토리를 관통하는 문장이라는 점이 가장 크겠지만, 이 드라마가 'B급' 혹은 '병맛'스러운 재미요소를 틈틈이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어우러진다. 제목에서부터 '이 드라마, 조금 컬트적인 유머코드가 있습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장면이 나온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 살아있는 밈이다


즉 이 드라마는 '아는 만큼 보인다'가 어느정도 적용되는 드라마다. 정치와 사회의 여러 요소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직관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출연자의 이름부터 단체나 기관의 이름, 출연자들의 지나가는 대사 하나하나에 풍자가 들어가 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이 드라마의 재미는 올라가기 시작한다.


'어공'과 '늘공'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드라마 구조는 너무 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소소한 모습부터, 사람들을 선동하며 정치 진출을 노리는 종교인("소금물을 마시면 역병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란 대사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다), 주로 평냉을 소비하며 '먹물'의 단어를 쏟아내는 진보 작가, 누군가를 특정하여 연상하게 만드는 '보수 정치 유튜버'들의 지나가는 한 마디 대사, 청년위원으로 소개되는 '위대남'이라는 인물 등등. 그 캐릭터의 존재나 대사 등에서 얻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통렬한 비판'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왜 이 드라마가 '블랙 코미디' 혹은 '정치 시트콤'이라고 하는지는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물론 그러한 묘사들은 이 드라마가 공중파가 아니라 Wavve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묘사는 꽤나 노골적이고, 때론 유명인의 이름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나PD'라든지). 그 외에도 인터넷에서나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표준어가 아닌 용어들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단어 하나를 등장시키는 것에 불과할 지라도 공중파에선 그 단어가 나오기가 어려웠고, 그렇기에 <이상청>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실감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몰입하게 한다. 그간의 드라마가 뱅뱅 돌려서 말하거나 개념을 설명해야 했다면, <이상청>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거나 표현하며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청문회에 드러난 국회의원들의 민낯


드라마의 스토리는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들을 다룬다.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땜빵'으로 야당 출신 전 메달리스트가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된다. 지지부진한 '쇼'를 반복하는 청문회를 지나면 누가 와도 장관의 스타일에 맞추어 자신의 몫을 해내야 하는 문체부 공무원들이 등장하고, 장관이 얼마 되지 않은 임기 안에 보여주려는 성과가 현실로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정치'의 과정들이 필요한지가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장관의 '작가' 남편이 납치되고,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행사'에 휘말리고, 언론이 그 일들에 불을 지피며 스토리는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누구나 으레 즐겁게 소비할만한 국회의원들의 정치쑈에 불과한 청문회도, 행사 하나를 준비하면서 드러나는 공무원들의 실상도, 철저히 이득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야당 중진 국회의원도 이 드라마의 메인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정치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주체들 : 정치인과 보좌진, 장관과 공무원, 언론, 청와대, 경찰과 시민, 때로는 외부에서 정치의 영역을 침범하는 종교인과 유튜버에 이르는 이들을 한데 모아 뒤섞어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라는 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이권과 욕심이 담겨 있는지, 그들의 뜻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섞여 나가는지가 낱낱이 묘사된다. 그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2021년의 한국사회를 발견하는 것도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일테다.


온갖 이야기들을 뒤섞으며 '빨갱이 정권'을 욕하는 목사 이야기는 하이퍼리얼리즘이란 걸 우린 확인했다


V-LOG와 같은 젊은 주제로 새로워 보이려는 공무원 사회, 언론과 선동에 휘말리는 시민들, 혐오를 이용해 좋은 자리를 얻고자 하는 이들, 연예인 데뷔를 빌미로 수렁에 빠져드는 청년들, 정치인들의 행위에 삶이 오가는 현실들, 피해자와 피해자를 이용하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지식을 팔며 돈과 명예를 원하는 먹물들, 수많은 피해가 자행되는 군대와 체육계 등. 이 드라마에 드러나는 한국 사회는 과거의 가치관과 현재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각자 주체들의 이득을 위한 행위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그 안에서 '정의로운 개인'이란 없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 이들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충돌 속에서 만들어지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땜빵' 문체부 장관은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문장을 그리게 된다.


드라마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납치'라는 내용을 전개하는 부분에서의 지루함이다. 문체부 공무원들과 장관, 정치인이라는 3요소가 만들어 내는 재미보다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납치극은 몰입도가 떨어지는 스토리였다. 해당 부분은 우리 사회의 검은 이면과 진보 지식인의 모습을 날 것으로 묘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때로는 보기엔 껄끄럽거나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요소들도 있어 속 편히 '블랙 코미디'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날이 규모가 커지는 스토리의 한 축이라는 점이 강했지, 그 자체로도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흔한 진보 지식인을 파산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두 번째는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1)피해자다움을 과감히 거부하는 청년과 2)사심없이 자신의 몫을 잘 해내는 문체부 대변인은 좋았지만, 전 여친이라는 목표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언론인 캐릭터나 '눈치없음'이 과하게 드러나는 문체부 계약직 캐릭터는 현실에서 보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흔히들 말하는 '요새 청년들은 개념이 없고 지멋대로야~'라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묘사였다. '보수 찌라시'에 들어가서 기자가 된 청년이 편집장에게 대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인 건 제쳐 두더라도, 사리분별 없이 행동해 문체부에 큰 피해를 입히는 계약직 청년의 모습은 별 고민없이 청년에 대한 편견에 과하게 집중했기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소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놀랍게도 이런 청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비서나 청와대에서 쫓겨난(?) 경호원의 모습은 나름 유쾌하면서도 적정한 수준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쟤 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 일 없이 적절히 예상의 범주에서 움직이는 캐릭터 중 하나로서 자연스럽다. 'MZ세대니까 무조건 특이하게 그려야지'라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청년들은 이 정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릴 수밖에 없다(물론 경호원은 조금 독특한 캐릭터지만, 청년세대에 대한 편견을 이용한 것이 아니다 보니 유쾌한 코미디 혹은 시트콤이라는 장르적 측면을 고려할 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람의 모습은 청년이라서 혹은 중년이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그러니 젊은 대변인과 20년을 문체부에서 살아온 중년의 미혼 공무원이 함께 조응하는 것이고.


공무원들은 장관의 소식을 TV로 본다


이 드라마는 정의를 찾는 내용은 아니다. 주인공조차 '정의'롭지는 않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정치적 상황을 이용한다.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떳떳하지 못한 거짓말을 하는 건 사실이다. 장관을 보좌하는 비서 역시 장관의 행동을 평가하는 동시에 자신의 살 길을 고민한다. 그렇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본래 정치란 그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거라면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결백'한 이들이 있다면 문체부 공무원 콤비다. 최연소 대변인과 문체부에서 20년을 보낸 기획조정실장. 이들은 어느 장관이 오건, 어느 상황이 닥치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이들은 자신 앞에 닥친 일에 진심이다. 뭐, 진심이라는 측면만 보면 문체부 장관과 야당 중진 국회의원이나 진보 작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이 시트콤은 누군가를 악으로 묘사하진 않는다(메인 인물 중에서. 중간 등장하는 타 인물들은 악인들이 꽤 있다). 누구나 개인의 사정과 감정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위선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예욕과 돈을 챙기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타인을 약점을 공격하며 본인의 이득을 취하며, 그 약점 공격에 당해 꼬리를 내리는 교수도 있다. '악'이 아니라, 정치라는 행위 앞에 선 주체들의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그 행위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우리에게, 시민에게 달린 일이다. 인간은 원래 다면적이다. 현실의 물욕과 질투심에 눈이 멀었음에도 민주시민으로서 도덕을 훼손하지는 않는 작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체육계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장관, 온갖 사건에 휘말리는 장관을 욕하다가도 다음 선거를 앞두고 알은체를 하는 청와대 정무수석, 돈이 없는 현실 앞에 무릎 꿇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청년들까지. 이건 '정의와 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현실을 리얼하게, 조금 코믹을 얹어 그려낸 시트콤이다.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정치적 싸움을 하는 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각자 다양한 삶의 경로에 놓여 있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그 리얼리즘, 조금 과했지만 다양하게 맞물리는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긴박감, 2021년의 작품에 어울리는 제작 수준(동물촬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한 촬영이라는 점이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드라마 등)까지. <이상청>은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웨이브 오리지널이라 많은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다만 이 작품이 많이 인기를 끈다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드라마에 드러난 서로의 모습을 조롱하게 될 것 같아 그 부분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정치주체에 불과한 것을.


이 드라마의 가장 명대사를 꼽으라면 3가지다. 공교게도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이 2개를 석권했다.



내 편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나의 적을 만인의 적으로 만드는 게 남는 정치라는 거


4선 국회의원의 위엄(?)이 드러나는 장면. 내 편이 되달라고 소리칠 필요 없다.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적을 나쁜 놈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알아서 모일 것이다.



나라에 새는 예산이 많다?


아니, 다 필요해. 다 필요한 사업이긴 한데. 우선순위를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 이게 결국 정치의 영역이거든. 난 오늘 정치를 한 거야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업은 없다. 우선순위가 있을 뿐. 그 수많은 순위들과 각자의 입장을 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


모든게 다 세트였더라구. 언젠간 철거되는. 그럼 그동안 종사했던 공무는 뭐였을까. 정치인들이 주연인 드라마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에피였을까.


아직 드라마 안 끝났어요. 실장님 역할도.


<이상청>에는 재밌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 이처럼 드라마 안의 인물들이 이게 드라마란 걸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는 것. 만화에서 종종 나오는, 만화가 이래도 돼?라고 하거나 작가를 불러오는 주인공들의 대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단순히 그런 유쾌한 요소로 넣은 게 아니라, 공무원들의 고민을 담은 대사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대사는 기획조정실장이 정치적 이벤트에 의해 사회적으로 욕을 먹고, 결국 잘리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순간에 나온 것이었다. 청와대에서도 장관을 날릴 게 아니라 실무진을 날릴 것을 얘기하기도 했고. 


결국 공무원은 정치인이 주연인 정치판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느끼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담겨 있었고, '드라마 안 끝났다. 실장님의 역할도'라는 대사는 '정치인이 아닌 우리도 충분히 주체이고 주인공이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오랜 만에, 다음 화를 기대하게 하는 즐거운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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