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대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노력을 인정하는 시도다
나는 왼손잡이’였다’. 그래서 유치원에 다닐 때는 내 기록에 ‘아이가 왼손잡이이니 오른손으로 쓸 수 있게 훈련을 지도하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난 그렇게 오른손으로 물건을 잡고, 오른손을 쓰는 법을 배웠다. 기나긴 1년여의 교정과 반항 끝에 나는 연필과 숟가락은 오른손으로 쥐는 양손잡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냥 가위를 집지만 나는 남들처럼 비슷하게 오른손으로 가위질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했다. 당신들은 그냥 수저를 집었지만 나는 수저를 집기 위해 밥상머리에서 1시간 동안 꾸중을 들어가며 밥을 먹지 못했다. 왼손으로는 펜을 잡지 못하게 해서 남들이 글을 한참 많이 썼을 때 난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당신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세상에는 있다. 당신들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그렇지 않은 상황이나 삶을 감각하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남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광고 카피처럼 ‘Just do It’하면 될 일을 하기 위해서.
당신은 그 사람에게 ‘그러니까 노력을 하면 되지 않겠니?’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너도 그냥 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도와줘야 해’라고 할 것인가? 당신이 보기에는 어느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인가?
공부 잘 할 기회가 ‘잘려나간’ 이들에게 기회주겠다는 고려대
고려대에서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을 폐지하고 그 돈을 가정형편이 곤란한 이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장학금 규칙을 바꾼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은 뭐가 되냐’라거나 ‘이미 국가장학금으로 주고 있지 않느냐’라며 그 시도를 비판한다. 마치 ‘가난한 학생’이 ‘공부 잘하는 학생’의 무언가를 뺏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묻고 싶다. 누군가는 ‘공부를 잘 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는 공부 대신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장학금을 성적 우수자가 아니라 가계 곤란 자에게 준다는 것은 공부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그래서 남들이 그냥 공부하면 될 때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몸을 굴려가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선언이다.
수업이 끝난 저녁 6시, A는 집에 가서 복습을 할 때 B는 아르바이트 장소로 뛰어가서 6시간을 내리 일하고 밤 12시에 책을 꺼내 2시간을 공부했다. A가 성적이 잘 나왔고, A는 장학금을 받았다. ‘노력의 대가’로. 그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는 B의 노력 자체를 무시해왔다.
고려대는 그 노력을 무시하지 않고, B가 A와 마찬가지로 공부에만 노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노력의 대가’를 무시하는 행위인가? 오히려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
고려대의 정책은 잘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잘려나간 이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정말로 ‘노력에 대한 대가’를 이야기한다면 공부만 해도 됐었던 학생의 4.5점과 알바와 병행하는 학생의 3점을 두고 정말로 4.5점을 ‘더 노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노력의 대가’란 말을 다시 생각하자
나는 당신들이 쉽게 내뱉는 ‘노력의 대가’라는 말이 무섭다. 노력의 가치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노력이 인정받기를 바라고, 고학점을 받은 학생들의 노력 역시 인정한다. 그러니까 동시에, 당신이 행동하기만 하면 됐던 일을 하기 위해 이 사회에서 ‘감각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 역시 이해하고 격려하라는 이야기다. 왜 누군가는 ‘남들과 비슷하거나 최소한의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를 부정당해야 하는가?
나는 묻는다. ‘남들이 그냥 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노력해야만 했던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이 아닌가? 공부를 잘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이미 취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학업을 장려’하는 돈은 학업을 잘하는 이에게 주어져야 하나 아니면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나?
정말로 고려대가 문제인가? 아니면 차를 타고 와서 이미 경쟁할 트랙에 올라와 있는 사람만 응원하고 트랙에 오기 위해서 먼 거리를 뛰어와야만 하는 사람을 무시해왔던 우리사회가 문제인가? 그간의 성적우수장학금은 가계 사정으로 수능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학생 대신, 높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들어가게 될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느 노력을 인정할지에 대한 선택이자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고려대는 노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간 무시당했던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유수 대학들의 장학금 제도 역시 그러하며, 우리의 국가장학금은 여전히 ‘맘 놓고 공부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박경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SNS에 ‘나도 미국 대학의 100%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 때문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며 ‘경쟁으로 고려대에 온 학생들을 또 경쟁시켜야 속이 시원한가?’라고 물었다. 동시에 ‘뛰어난 사람들 챙겨주는 건 시장이 알아서 한다. “경쟁할테니 살아남으면 돈 주세요”는 해답이 아니다’고 적은 바 있다.
고려대의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에서 인지되지 않았던 수많은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게 될 좋은 결과만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 말이다.
*이 글은 고함20(www.goham20.com)과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