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훈 Apr 26. 2022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어려움

오늘도 나는 배우고, 또 배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린시절에도 나는 종종 어떤 부분에서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라고 여기곤 했다.

비록 또 어떤 면에서는 보다 탁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굳이 잘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조금 더 나은 정도였고, 

무언가 남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을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우울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름 '고고하게' 콧대를 드높이고는, 남들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물론, 강하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으레 그 점이 약한 것이듯, 나는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이다)

그저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되뇌이고는 적당히 살아올 수 있었다. 

때로는 남들이 보기엔 거만해보이기도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점도 꽤 있었다.



그만큼 내가 타인들 누구나 해내는 것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할 때엔 꽤나 충격이곤 했다.

그 일들은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고는 별로 없다가(초등학교 시절엔 왕왕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엔 종종 있었는데, 이를테면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당시의 나는 같은 20살들에 대해 속으로 조금은 깔보는 자세를 갖고 있었는데, 그건 아주 우스운 이야기에서 출발한 생각이었다. 당시엔 나름 '청춘'이라는 단어가 생명력을 전부 잃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만이 '낭만' 또는 '청춘'을 좇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비슷한 20살들은 아직 그런 걸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정신적으로 어리거나, 젊음의 선물을 유기하고 토익점수와 학점/취업 따위에만 목 맨 과한 현실주의자라고 여겼다.





그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는데, 대학은 고등학생과 달리 가정통신문 따위는 주지 않고, 내가 무언가를 했는지 안했는지 일일이 체크하는 담임선생님도 부재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이 열심히 학교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교외로 나가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런 변화없이 느긋하게 시간을 죽일 따름이었다. 이를테면 학생증을 만드는 일조차도, 그 누구도 나를 붙잡고 설명해주거나 만들어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았고,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그 카드가 필요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알아서 해야하고 그 결과도 책임져야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남들이 열심히 무언가 목표를 두고 달려나가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할 때, 나는 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먼저 접어두고는 어쩌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수업을 빠지고는 청춘이란 이런 것-이라는 뽕에 빠져 있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얼빠지게 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건 뻔한 일이었다. 남들이 제 때 가져온 과제를 보고는 '오늘 과제가 있었느냐'라고 되묻고 3시간의 수업시간 중 주어지는 2번의 쉬는시간에 전산실에 달려가서 부랴부랴 a4 용지를 적당히 채우고는 인쇄해서 내는 대학생의 학교생활이란 '낭만'과는 거리가 먼, 볼품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그 누구도 그런 나를 질타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아싸가 되건, 수업을 빠지건, 무언가를 시작하건 하지 않건 그 누구도 그런 나를 붙잡지 않았다. 10대 시절 내내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 건만, 정작 내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 자유를 만끽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자유를 방종으로 여기고 있는 상태였다. 



20살이 저물 때 쯤에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들-대학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진행하는 일이나 맘에 내키지 않아도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사귀는 일이나 싫더라도 종종 분위기에 어울리는 일이나 본인의 목소리나 뜻을 매순간 관철시키지 않는 일이나 보다 자신을 깔끔하게 가꾸고 다니는 일이나 하는 사소하고도 대단한 일들-을 다른 이들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잘 해내고 있는가를 감탄하게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알바를 시작하고, 새로운 대외활동을 시작했으며, 새로운 사람들과도 적당히 어울리고 기존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고작 그 정도의 내가 너무 부끄러울 만큼 사람들은 '대단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준비없이 20살이 되고 대학생이 된 건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어쩜 그렇게 다들 이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인지. 





그 이후 20대를 살아오면서, 종종 그런 부끄러운 발견의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군대에서도 있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있었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나도 적당히 멀쩡한 사람이었겠으나, 나는 어딘가 엉성했고,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예절'에 대해 별 감각이 없다든가, 첫 인턴 면접 복장에 대해서 '그냥 입고 가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다가 친형에게 혼이 나고는 양복에 가깝게 입고 나가 '다들 어떻게 이렇게 잘 입고 왔지' 하고 놀라게 된다든가, 머리 손질을 매일같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지 못해 포기한다든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아랫사람처럼 구는 법'을 잘 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일들. 자질구레하지만 자질구레하지 않은 일들.



그걸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나에게 질타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운 좋게 그런 부족한 면이 드러날 일도 사실 거의 없었다. 다행히 내게는 다른 면에서 보다 나 자신을 나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술법(?)이 있었고, 덕택에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이들은 그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 모든 부끄러움이 나만의 몫이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내가 스노우보드를 썩 잘 타지 못한다는 건 그렇게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있을 뿐 대부분은 그렇게 잘 타지 않는 편에 속하고, 이 사회 속에서 한 명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능력은 아니니까.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너무나 '필수적이고 당연한' 영역의 일이라서, 그 누구도 '이걸 제대로 못 해내는 사람이 있다고?'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서, 내가 꽤나 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1인분'을 하거나, '혼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의 어딘가가 빠진 듯한 느낌.



물론 개중에는, '사람 간의 개성'으로 치부할 수 있거나, '꼭 사회에서 정한 루트나 상대로 살 필요는 없다'는 말로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겠으나, 그럼에도 '할 수 있는데 나의 선택으로 안 하는 것'과 '그 자체를 잘 몰라서 못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그러니 때로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에 꽤나 부적합한 인간인가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찾아온다.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적당히 받아들이게 된 순간들.






실제로 최근에 아예 독립을 하면서(대학시절 했던 자취나 기숙사 생활은 절반의 독립이었기 때문에, 모든 짐을 떠안고 혼자 집에서 사는 건 지금이 처음인 셈이다), 꽤나 '내가 1인분의 인간 값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건 꽤나 기묘한 기분이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흔히들 잘해내는 사회생활을 나는 잘 못하지만, 나만의 강점이 있어서 어떻게든 기생하듯 살아내는 인간' 정도로 정체화를 해왔는데,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라고 하기엔 90%가 은행 돈이지만) 집세와 관리비를 내고,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고, 주기적으로 세탁을 하고 의류를 고이 접어서 관리하고, 매일 간단하게나마 청소를 하고, 조금 더 예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꾸미기도 하고 식물도 기르는 일들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나도 이 사회에서 혼자서 설 수 있는 인간이었나'라고, 거의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그 기분이야말로 '오묘'하고 이상야릇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하루의 어떤 순간에 '내가 또 사회부적응자스러운 모습을 내비쳤나' 싶을 때가 있다. 나름의 취향이 확고해서 남들이 보기에 '정말 까다로운 인간이군'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회사의 어른들이 보기에 '아직 주니어가 뭐 저렇게 애가 위아래가 없는 것 같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거나, 일상의 대화에서 혼자 튀는 이야기를 했구나 느끼거나, 그저 내뱉은 말에 고민이 별로 담겨 있지 않아 상대가 기분이 나쁜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되는 등, 여전히 나는 내가 이 사회에서 생각하는 '적합한 인간형'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학을 하진 않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을 자아내는 순간들이고, '어쩔 수 없다'고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익숙한 경험. 대신 사후에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며 혹시나 오해가 생겼다면 바로잡고자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 대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다 괜찮은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익숙한 경로.



그 순간들이 익숙해지는 만큼 나는 언제라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법을 배웠고, 헤어진 다음 연락 한 번 더 하는 법을 배웠고, 조금 더 조심하는 법을 배웠고, 돌아가는 길에 내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검토하는 습관이 생겼고, 부족한 만큼 내가 줄 수 있는 걸 기꺼이 내주면서 도움이 되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난치기보다 진중하게 사람을 대하게 되었다. 그만큼 먼저 조심하다 보니 사람들이 장난을 걸며 쉽게 친해질 때 '재미 없는 사람' 혹은 '조용한 사람'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입을 닫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다. 물론 친근해진 사람들 사이에선 누구보다 시끄러워지지만,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 혹시나 조심하지 않았다가 또 부족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자기검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셈이다. 





왁자지껄 술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전히 나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어렵다'고 느꼈던 20대 초반의 일들,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을 만들어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지치더라도 다양한 자리에 나가보며 배워나가고자 했던 일들, 사람들끼리 친해진 모습을 보며 나는 부족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다 생각해야만 했던 일들, 그 모든 생각과 순간들이 부끄러움으로 시작한 나의 모습이자 삶이었고, 나이의 앞자리가 3이 된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혼자 꿋꿋이 설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처럼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

나라는 인간은 그럴 수 없는데, 어떻게들 가르쳐준적도 없는 일들을 잘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한심한 순간, 부끄러운 순간 하나 없이 1인의 값을 제대로 해 나가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여전히 내게 사회생활은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을 찾아서 : 나는 어디로 가야하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