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학벌 논란을 보며
군대에서 겪은 충격 중 하나는 내가 '서울에서 인생 대부분을 보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서울 안에 사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이 빈곤층에 속했기에 서울이 그렇게 '멋진' 도시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강남3구를 제하고는 '못산다'고 하는 동네가 대부분이니까.
허나 서울에 살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서울에 산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나는 군생활의 절반을 '서울이라고 다 잘사는 것 아니야'라고 해명하는 데 보냈지만, 남은 절반은 그것이 특권임을 인정하고 수용해 가는 과정으로 보냈다.
사람은 자신이 겪지 않은 환경을 잘 모른다. 그것에 대해 100%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러한 환경의 존재조차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무지해도 된다는 것'이 바로 '특권'이다. 부자는 가난한 이의 고민을 모른다. 건강한 이는 아픈 이의 고통을 모른다. 고학력은 저학력의 자기검열을 모른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의 고통을 모른다. 몰라도 되는 것이 특권이고 모르니까 특권이다.
분명히 할 것은 죄는 아니다.
고학력도 죄가 아니고 잘 사는 것도 죄가 아니고 건강한 것도 죄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계급화 되는 수많은 기준들에서 상위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나 역시 자신이 가진 특권들을 죄로 여기며 고민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고,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인정받아야 할 개인의 성과가 죄로 치부되는 사회는 분명 그르다. 페이스북에서 학력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죄로 치부하는 거라고 이해한다. 가장 건강한 것은 누구나 지 맘대로 써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 사회지 모두가 쓰지 않는 건 아니다.
허나 동시에 분명히 할 것은, 특권임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차별들을 줄여나가기 위한 시작이자 끝이다. 페이스북에서 난리가 난 학벌 논란의 맹점은 따지고 보면 고학력인 사람이나 저학력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학벌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학벌 위주 사회가 문제라는 점에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길러진 것에 가깝다. 사람을 먼저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정훈 형의 글처럼,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스카이, 또는 적어도 '이름 있는 대학' 출신의 특권 중 하나다." 지방대 생이 무슨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이 과연 그 이야기 자체로 받아들여 졌을까? 광고천재로 불리는 이제석의 책이나 강연 어딜가나 '지방대'가 따라다닌다. 학벌에 관한 수많은 관점과 논의를 제하더라도 그것만큼은 명징하다.
우리 사회는 말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그 사실을 털어놓고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내가 '환자'임을,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속하는 사람임을 털어놓을 필요 없이 완치되어 아무렇지 않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티를 낼수도 없을만큼 고통을 겪는 이들의 삶을 모르니까 가능하다. 학벌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는, 사회의 기준에서 '하'에 속하는 것들을 가진 사람은 비판은 커녕 '티'조차 내지 못한다.
'티'를 내고, 발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이건 모든 것이 그렇다. 죽은 사람에 비해서,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 특권이다. 나는 시력이 나빠서 여전히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데, 그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앞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특권인지를 깨닫는다. 그러한 특권들은 죄는 아니다. 우리 모두 최소한 하나씩의 특권은 가지고 있으며 수십 수백개의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허나 그 특권을 인지하지 않고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드러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당장 왕따를 당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그 사람이 왕따를 당하고 있음을 누군가 인지하고 돕는 것이지 '나는,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는 왕따가 없고 난 왕따를 안 시키지만 왕따가 문제니까 이야기해봅시다'는 아니다. 자신이 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똑똑한 이들의 토론은 문제 해결에 무조건 필요하지만 현실과 멀어지면 탁상공론이 되고 문제 당사자의 반감만 부른다.
특권임을 알지도 못하면서
분명히 사람은 자신이 겪지 않은 사실을 잘 모른다. 어떠한 남성들은 차별받는 여성의 존재를 잘 모른다. 어떠한 오른손잡이인 사람들은 차별받는 왼손잡이를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후천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거지 저절로는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사람들의 삶을 잘 모른다는 걸 인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을 고치려는 마음을 먹고 있다면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학벌 논란은 수많은 지방대출신(사실 지방대도 특권이다. 그 무시받는 지방대도성적 상위 10%인 사람도 많다.세상엔 4년제 대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대학교를 가지 못한 사람도 많다. 흔히 학벌 문제를 인서울4년제vs지방대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몰랐겠지만)들이 보기엔 마치 조선시대 후기에 진짜 백성은 개같이 살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백성의 삶을 논하는, 무능한 사대부에 불과할 게다. 저 작자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나 싶지만 말해봤자 어디' 천한것이'라고 할게 뻔하니까, 난 닥쳐야되니까 그냥 가만 있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들은 정작 그 잘나신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른다. 살기 바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