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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May 25. 2016

강남역 10번 출구의 본질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라고 하지 말라고?

0. 이번 강남역 이슈에 대해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봤다. 허나 그간 이야기를 내고, 많이 공유가 되는 사람들을 팔로우해서 본 결과, 아무도 "한국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취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건 하나다. 여성을 약자, 죽여도 되는 사람, 내가 가진 울분을 풀어도 될 존재로 여길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로 인식되어 있다는 거다. 그걸 우리 사회는 1년간 '여성혐오'란 말로 불러왔다. 그게 이 사건의 a부터 z다. 쉽게말하면 이번 일이 터졌다고 여자들이 무조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당신을 보고 '저 사람이 날 칼로 찌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단 얘기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여성이 약자로 인식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것이고, 그 두려움을 느낀 여성들이 그 두려움과 그동안 겪어왔던 온갖 나쁜 일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 염세진


1.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에 여행을 간다. 유럽은 치안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밤에 거리 걷기를 두려워하고, 흑인을 보면 괜시리 '쫀다'. 이는 실제로 인종차별이나 소매치기 따위를 '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에서 '아시안'은 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두려움이다. 자신이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라는 것을 인지하는 사회인지 그럴 필요가 없는 사회인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유럽에 가서 인종차별을 겪는다고 해서 '유럽인들은 전부 인종차별주의자야!'라고 하지 않는다. 안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에 '유럽에서는 종종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두려움을 공유할 뿐이다. 더해서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자주 겪는다고 떠든다고 해서 유럽인들은 '난 인종차별 안하는데 왜 날 인종차별 주의자로 모냐'고 하지도 않는다. 유럽인들에게 혹은 해당 국가사람에게 이러한 문제를 떠드노라면 그들은 '미안하다. 동감하고, 없애야 할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며 그 인종차별주의자를 함께 욕한다.


2. 문제의 본질은 남성들이 보기에 '과격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남성을 혐오하는지가 아니다. 여성들이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니다. 애초에 그건 사실관계가 틀린 얘기다. 본질은 당신 주변에 있는 여동생, 누나, 어머니, 여자친구, 후배, 선배들이 사실은 두려움을 안고 세상을 살고 있었다는 거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인 모든 여성들이 많은 남성들이 일컫는 '노답 메갈'은 아니다. 그들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은 '은연중에 두려워하던 일'이 '익숙한 곳'에서 실제 사건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나는 남성으로서, 남성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왜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해'라는 울분을 이해한다. 군대에서 1년 9개월을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꼬라박으면서, 어느새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가장의 책임감'으로 이해하면서, 쓸쓸히 밀려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왜 남자는'이란 울분이 생겨났다. 여성들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범죄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남성들이 울분을 품고 '왜 남자라서'하는 부분이 있듯이, 그녀들도 '왜 여자라서'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부분은 실제 성추행과 성폭행, 온갖 기분나쁜 경험들과 자기검열과 '조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거다.


3.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보지 마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보지 마라. 그냥 인간이 갖고 있던 어떤 특질 때문에 죽어야 했던 한 인간을 생각해라. 그리고 그 인간과 같은 특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느낄 두려움을 생각해라. 문제는 아주 단순하다. '메갈'과 '일베'는 문제의 한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내 가족인 여성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내 후배나 선배가 '무섭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렇구나'라고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왜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냐'고 생각할 필요 없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은 이해한다. 허나 그 흐름을 끊어라. 거기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ㅠㅠ하며 친구를 태그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당신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두렵고,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슬프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설령 그녀들이 울분에 차서 '남자들은 전부 쓰레기야'라고 한들 어떤가? '우리 역시 수많은 여자들을 썅년 혹은 김치녀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당위성을 가지고 분노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설령 그것이 나를 욕하는 것이라 해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4. '남혐'이 조장될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지금의 분위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남자들은 다 범죄자야'라고 하게 될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남자들은 다 늑대야'라고 말하는 사회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허나 정말 남혐이 생길까 두려운 것이라면, 함께 슬퍼해라. 남자라서 몰랐던, 여성들이 겪었던 두려운 일들을 생각하고 공감해주어라. 그렇다면 '남자들은 정말 개새끼야'라고 외칠 사람들도 '전부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왜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라고 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은 사회에 있지 여성에 있지 않다. 뭍 남성과 여성이 혐오하는 '김치녀'라는 존재 역시 그러한 사회를 이용할 뿐이지 그러한 사회를 만들지는 않았다. 여자는 그런 사회를 만들지 않았다. 여전히 남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자선임과 간부고 그런 시스템을 만든 남성이고 남자로서의 책임감을 강요하는 사회다. 당신이 지금 여성에게 '남성에게 분노하지 마라'고 하듯이, 당신이 분노해야할 대상 역시 여성이 아니다. 남성도, 여성도 피해자일 뿐이다.


남자를 조심하라고 한 건 남자들이었다


5.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때 일이다. 밥은 늘 부족했고, 우리 분대는 가장 밥을 늦게 먹어야했고, 그 때는 이미 밥이 없었다. 가장 먼저 먹은 분대와 싸움이 일어났다. '쟤네가 밥 많이 퍼서 다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허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왜냐면 어쨌거나 우리는 유일한 식사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 날 분대장은 우리를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왜 너희끼리 싸우는 것이냐. 왜 피해자끼리 싸우냐. 문제가 있으면 차라리 나를 욕하고 소대장님을 욕하고 군대를 욕해라. 어차피 피해자일 뿐인 너희끼리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내가 너희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욕하지 못하고, 너희와 비슷하거나 낮다고 생각되는, 같이 협동해야할 같은 편인 같은 훈련병끼리 욕하고 싸우는 것을 부끄러워해라"고 이야기했다.


6. 몇 가지 모습만, 목소리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마라. 당신이 '왜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냐'고 찍은 대상에는 당신의 여자친구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선후배도, 당신의 친구도 있다.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들에게 차라리 직접 물어봐라. 혹은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봐라. 왜 수많은 언론사가 이 얘기를 '여성혐오'라는 말을 쓰며 다루는지, 왜 지식인들이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는지, 왜 수많은 여성들이 거기에서 포스트잇을 붙이고 자신이 겪은 문제를 풀어내고 있는지 직접 알아봐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정말 '여성'들이 나를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는지. 당신의 가족, 친구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두려워하는 그녀들을 함부로 판단하기 이전에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을 돌아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길거리를 걸어다니면서 돈을 뺏길까라는 걱정은 해본 일이 있지만,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성이 내 엉덩이를 만지거나 성폭행을 목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걸 겪은 일은 없다. 술을 마실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군가가 내 신변을 위협할 걱정을 한 적은 없다. 살면서 성추행과 성폭행 걱정을 한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일들을 난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라서. 남성들은 '왜 내가 군대에서 그렇게 고생한 것을 사회는 몰라주나' 답답해 왔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성들은 '왜 내가 성추행 당하고 성폭행 당하고 그런 위협에 시달린 걸 몰라주나'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7, 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차별을 하지 않는삶을 살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내가 하기 시작한 것은 말을 할 때 그것이 차별적 언어인지 주의하는 것과 여성들의 삶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 뿐이다. 난 남자고, 1년 9개월 동안 '왜 내가 이래야 하나'를 울부짖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인생을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고, 늘 무언가를 양보하고 매너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매너손'이라는 걸 보면서 저렇게 해야 욕을 안 먹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잘하거나 기타를 치면 인기를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혹은 잘생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내가 최근 1년간 배운 것은 내가 가졌던 수많은 생각들의 뿌리가 차별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내가 전혀 몰랐던 여성들 삶 속의 고통이었다. 지금 내가 이해하는 것은 내가 겪은 문제와 자기검열과 분노와 생각과 피해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군대다녀온 것이 좆같듯이 누군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추행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고 찔려죽어야만 했다는 사실이 좆같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사건이 무엇이 됬든 그동안 쌓여있던 두려움과 자기검열과 좆같음이 터졌을 뿐이다. 그뿐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본질이 아니라 사라예보 사건처럼 그냥 문제의 발화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터졌다'는 것이고, 그들은 '당신'을 타겟으로 하고 터진 건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그렇다한들, 터질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공감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을 타겟에서 거둘 것이다. 그 뿐이다.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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