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훈 Jun 08. 2024

컨셉에 진심인 호텔, 호텔1899도쿄

차茶를 마시고, 쓰고, 느끼는 호텔

컨셉이 있는 숙소를 가는 건 즐거운 일이다. 불필요한 것 다 빼고 컴팩트하게 준비한 비즈니스 호텔이 필요할 때도 있겠고, 하루 잘 머물다 가기만 하면 충분한 숙소를 원할 때도 있겠지만 ‘숙박’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조건 중 하나는 역시 숙소의 컨셉이다. 물론 5성급 호텔이나 비싼 리조트 등 ‘호캉스’라고 부를만한 곳 역시 그렇겠지만, 꼭 가격을 엄청 비싸게 지불하지 않더라도 숙소만의 컨셉이 확실하다면 그 경험은 즐거워진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옥 숙소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옥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컨셉이 있으니까. 개인적 경험으로는 ‘웰니스’를 중시하는 정선의 파크로쉬나, 제주의 플레이스 캠프,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 지난 번 포스팅한 도쿄의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도 있겠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진 곳으로는 광명의 테이크, 파주의 모티프원, 월악산 유스호스텔, 부산의 굿올데이즈 호텔 같은 곳들도 있을 것이다.




꼭 가격이 5성급 호텔처럼 비쌀 필요는 없다. 그만큼 서비스나 시설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최소한 이 숙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그 경험이 꽤 특별해진다. 이번에 방문한 도쿄의 ‘1899 호텔 도쿄’도 비슷했다. 이곳은 ‘차茶’가 컨셉인 곳이다. 평소에 차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님에도, 머무는 짧은 1박 시간 동안 이 호텔의 노력과 디테일을 찾고 마주하는 기쁨이 있었다.



1899 호텔의 위치는 일반적인 여행객들에게 가장 선호될만한 곳은 아니다. 신바시 지역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긴자와 멀지 않기는 하지만 걸어가기엔 부담스럽다. 지하철 역이 도보로 7분 정도에 있어서 멀지는 않지만 가깝다고 하기엔 애매한 정도다. 아무래도 도쿄타워가 가깝고 도보로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긴 하지만 보통 여행객들이 시부야, 신주쿠를 선호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래저래 최상의 위치라고 하기엔 어렵겠다. 대신 밤에 시끄럽지도 않고, 신바시 지역의 맛집들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쿄에 처음 오는 사람보다는 두 번째 이상의 방문인 사람에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호텔 건물은 튀지 않는 길거리에, 튀지 않는 모습으로 있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지나칠 수도 있고 존재를 모를 수도 있을 만하다. 화려한 로비 역시 없다. 카페 겸 조식 장소로 쓰이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야 로비가 나온다. 누구에겐 재밌겠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하거나 아쉬운 포인트겠다. 로비는 호텔 로비라기보다는 찻집이나 카페의 카운터와 비슷하게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이 담담함이 아주 좋았다. 차라는 컨셉에도 찰떡같이 어울렸고, 2층에 올라오는 순간 편안해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호텔에게 바란 건 이런 차분함을 베이스로한 분위기였으니까.



체크인할 때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이전 숙소에서 체크아웃하자마자 여기로 넘어왔기에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었을 때였고, 짐을 맡겨둔 뒤에 다시 나왔다. 실제로 체크인을 한 건 저녁 즈음이었다. 그 때 확인 절차를 마치고 짐을 받으려 하니, 이미 짐을 방에 올려두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소한 친절이 아주 고마웠다. 물론 좋은 호텔에서는 자연스럽게 해 줄만한 서비스이긴 하지만, 1박에 10만원 대로도 예약이 가능한 3성급 호텔에 기대하는 서비스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룸 업그레이드까지 되었던 점도 감사한 일이었다.



방은 일본의 대부분 호텔과 비슷하게 넓지는 않다. 하지만 특출나게 좁지도 않았다. 공간활용을 잘 한 점이 눈에 띄었고, 여러 디테일들이 좋았다. 가격대비 좋기도 했지만, 더 수준이 높은 호텔에서도 없는 것들도 있었다. 


1) 어메니티 



(좌) 페이스/핸드 워시도 자체 어메니티, 바디로션은 2개나 줬는데 그것도 자체 어메니티.
전반적으로 어메니티 인심이 좋은 편. 우측은 이미 손을 대서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게 흩어져 있다.


일단 종류가 많았다. 욕조에 쓸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칫솔을 색깔이 다르게 구분한 것도 좋았다. 게다가 샴푸/컨디셔너/바디워시 등이 녹차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자체 어메니티인 것도 돋보였다. 어메니티는 일반적으로 호텔의 등급에 따라가는 데 그치다 보니 크게 다를 걸 기대하게 되지도 않는데, 자체 어메니티인 것만으로도 감동스러웠다. 컨셉에 정말 충실했다.


2) 내부 집기


(좌) 숙소 정보를 태블릿으로 확인할 수 있고, 체크아웃도 태블릿으로 진행한다 (우)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는데, 호텔에서 블렌딩한 차였다
TV와 연결되는 HDMI/USB 선이 외부에 나와 있어 이용하기 편했다
(좌) 숙소 내부 디자인 요소에 차/전통적인 모티브를 따왔다 열면 거울이 된다. (우) 화장실 크기는 이정도면 일본에선 괜찮은 편.. 
(좌) 일본 호텔엔 물을 주지 않는 곳들도 있는데, 이곳은 물 인심이 좋아서 냉장고 안 2병과 밖에 2병이 있었다
(좌) 일반 컵이 아니라 차라는 컨셉에 맞춰 다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포트는 드롱기. (우) 110V를 사용하는 일본에선 보통 전기가 맞지 않는데, 220V도 사용가능한 포트였다


전반적으로 넓지는 않은 공간이지만, 컴팩트하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차에 맞는 컨셉이 군데군데 돋보였고, 우드톤의 인테리어도 잘 어울렸다. HDMI/USB 선이 외부에 나와 있는 점이나 220V 전압의 물건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등 편리함을 추구한 요소들도 좋았다. 이 가격에 이렇게까지 꼼꼼해도 되나 싶은 정도여서 구석구석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3) 잠옷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호텔 가운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푹신한 건 좋지만 그만큼 무겁고, 움직이기에 묘하게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누워서 잘때도 끈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거나 하는 일들도 있다. 기분을 내기엔 좋지만,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활동성이 좋은 파자마를 주는 곳을 선호한다. 이곳도 그랬는데, 특별할 건 없지만 자체 파자마를 준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어쨌거나 고객이 마주하는 모든 요소에 '어떻게하면 컨셉을 잘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이니까.


4) 로비


로비는 앞서 말한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찻집에 들어온 것 같은 인테리어는 독특하면서 편안하다. 또 곳곳에 즐거운 요소들이 있었다. 체크인할 때 더운 물수건을 주는 점부터 '환대'의 느낌이 났고, 차와 관련된 호텔의 상품들은 단순 구색 맞추기 정도가 아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좌) 차 관련 용품을 구매할 수 있고, 차 마시기 체험도 의자에서 이루어 진다 (우) 체크인할 때 물수건을 준다
(좌) 체크인 공간에도 차가 놓여 있다


또 1899 호텔 도쿄는 투숙객들에게 무료 차 시음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걸 마시는 공간 역시 로비다. 그냥 체크인/체크아웃하는데 그치는 공간인 로비를 다채롭게 활용하는게 좋았다. 시간대별로 다른 차를 제공하는데, 오전에는 마차 한 종류만 제공하고, 오후 대부분의 시간에는 여러 차를 고를 수 있다. 꽤 늦은 시간까지 하다 보니 여기에 매달리지 않고 개인 일정을 소화하고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나도 늦은 밤에 이용했다. 



여러 차를 고를 수 있는데, 한번도 마셔본 적 없는 시즈널 티를 골랐다. 그 이유는 벚꽃 호지차에 단팥 수프를 섞은 거였는데,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맛있었다. 단팥이 들어간만큼 달아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긴 하겠다. 호지차 원래의 맛은 옅어지긴 했지만 꼭 차의 오리지널리티만을 추구할 만큼 잘 아는 건 아니므로 이런 변주가 반가웠다. 사실 호지차야 여러 곳에서 맛볼 수도 있지만 단팥과 섞은 건 언제 먹어보겠냐 싶기도 하고. 호텔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차를 이렇게도 즐길 수 있다'라는 제안도 되겠다. 바스라지는 캔디와 같은 디저트와 함께 제공된다.


차는 원한다면 여러 잔을 청해서 마실 수도 있는데,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한 잔이 충분히 깔끔해서 한 잔만 마시고 끝냈다. 차를 마시는 시간 동안은 리셉션에 있는 직원들과 서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보통 리셉션 직원과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상상하진 않는데, 이곳에선 차를 마시면서 본인이 원하면 말을 걸기도 하는 편한 분위기였다. 내가 마시고 있을 때도 옆 테이블의 외국인과 직원이 홋카이도 여행 경험에 대해서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었고, 우리도 '이런 호지차는 처음'이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호텔의 경험은 전반적으로 완벽했다. 잠자리도 편안했고, 차를 주제로 한 경험들이 즐거웠다. 세심한 디테일과 배려들도 감동이었다. 아쉬운 건 조식이었는데, 별로였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정상 이용할 수가 없어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조식은 2,000엔이므로 한국 돈으로 18,000원 정도라 비싼 편도 아니었다. 다음에 투숙할 일이 있다면 조식 경험을 하고 싶다.



'좋은 호텔은 무엇일까' 혹은 '좋은 숙소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그 대답은 다양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싼 숙소일 수록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 것이다. 넓고 잘 꾸며진 공간들, 비싼 물건들로 채운 로비와 객실, 수준 높은 서비스와 시설과 같은 요소들은 보통 가격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가격만으로 줄세운 것과는 다른 만족도가 나타나는 건 그 외에도 다양한 포인트들이, 또 개인의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평가에 개입하기 때문이겠다.



개인적으로는 컨셉이 있는 숙소를 좋아한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좇고,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구석구석에서 말하고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 단순히 쉬고 자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그 숙소에 있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더해서, '이런 부분까지 신경쓰는' 숙소라면 숙소들이 갖춰야 할 기본 요소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을 거라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이다. 손님이 꺼내드는 수저에도 신경쓰는 음식점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청결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호텔 1899 도쿄는 그런 면에서, 방문했던 국내외 숙소들 중에서 손꼽을만큼 맘에 들었다. 일반적인 4,5성급의 가격이 들지도 않는데, 그런 호텔들보다도 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5성급 호텔은 머무는 동안 기분도 나고 즐겁지만, 돌아가면서 '또 와야지'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쉽지 않다. 물론 가격이 비싸기 떄문이겠지만, 말 그대로 '호캉스'를 즐겼다는 느낌이 커서겠다. 좋은 숙박 경험이 아니라 호캉스라는 특별한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니까. 



호텔 1899 도쿄는 다음에 또 가고 싶은 숙소다. 다시 작은 요소마다 배어 있는 환대를 경험하고 싶고, 호텔 로비에서 내어주는 차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느끼고 싶다. 숙소 곳곳에 있는, 투숙객을 배려하는 요소마다 편리함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20살 유럽여행이 남긴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