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이 뒤엉킨 역사가 남은 곳을 여행하다
*2024년 1월 기준입니다.
나가사키를 가게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후쿠오카에만 3박 4일의 전체 일정을 들이기 아쉬웠기 때문이다. 후쿠오카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후쿠오카는 충분히 좋았고, 먹고 싶었던 음식은 쌓여 있었기에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가사키에 하루 투자했을 때 더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아본 근교 도시가 있었지만, 결국 나가사키가 선택된 건 크게 세가지였다. 1)나가사키만의 특색이 있다 2)나가사키에는 둘러볼 역사가 있다. 3)후쿠오카에 비해 조용할 것 같다. 1)의 특색은 여럿이었다. 트램이 다니는 도시라는 점, 차이나 타운이 있다는 점-그래서 나가사키 짬뽕을 비롯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카스테라를 비롯한 나가사키만의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거라는 점, 운젠과 같은 온천 여행도 가능하다는 것 따위였다. 2)는 단순했다. 원폭이 있었던 공간이고, 그곳에 조선인 피해자들도 있었고, 그 공간을 방문하고 싶었다. 3)은, 나가사키도 큰 도시지만 후쿠오카보다는 조용할 것이고, 여행객도 적을 것 같아서였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길은 어렵지는 않지만, 번거롭다. 최소 한 번은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당시 우리 일행은 더 여러번 갈아타는 노선을 이용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기차표만 예약해도 되지만, 우리는 가격을 비교했을 때 북큐슈 레일패스를 사는게 낫다고 판단했고, 그 레일패스를 발권한 다음 나가사키로 갔다. 이래저래 편도로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여러 열차를 갈아타는 과정은 시간이 촉박해서 꽤나 긴박하고 번거로웠지만, 총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다 보니 후쿠오카에서 충분히 갈만한 근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가사키에서 1박2일을 머물렀다. 시간이 촉박해 운젠 지역을 가보지도 못했고 이래저래 쫓기는 느낌이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가사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좋았고, 다채로웠다. 나가사키 역에 내린 뒤엔 우선 예약한 료칸에 갔다. 료칸들이 대개 그렇듯 아예 도심에 있지는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긴 어려웠고, 역 앞에 있는 셔틀 버스를 이용했다. 다행히 도착 시간과 픽업 시간이 딱 맞았기 때문에, 트램 1일 자유권만 구매한 뒤 바로 셔틀을 타고 료칸으로 이동했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야타로 미나미칸'이라는 곳이었다. 야타로 호텔로도 나온다. 작은 료칸은 아니고, 꽤 여러 층을 가지고 있는 큰 료칸이었다. 체크인할 때 경험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셔틀 버스 도착에 맞춰 직원들이 나와서 안내를 했다. 그 부분도 좋았지만, 체크인 과정에서 응대한 할아버지 직원의 친절함과 솔직함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영어로 소통을 했는데, 무엇이 몇 층에 있는지, 탕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와 같은 시설 설명도 한참이었지만 우리 역시 체크아웃 후 나가는 버스라든지 짐을 내려놓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갈 예정이라 택시를 불러줄 수 있는지 등 궁금한게 많았다.
일반 호텔에서 걸리는 시간보다 2-3배를 들여 체크인을 하는 과정에서 침착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었고 대화를 나눴다. 야외 노천탕은 현재 이용할 수 없다는 점과 같은 소식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대화를 마친 뒤 굉장히 정중하게, 하지만 인간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담긴 표정으로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그 앞에서,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무슨 소리냐, 너무 잘한다. 너무 고맙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애초에 나도 영어를 못 한다) 이처럼 기분 좋은 접객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그 체크인을 하는 사이 다른 직원은 다른 일행에게 이미 갈아입을 유카타를 전달한 상태였고, 기분 좋게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잠시 풀어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1박2일이라는 시간은 짧았고 둘러보고 싶은 것은 많았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돈가스 집이었다. <분지로>라는 곳인데, 본점은 아니고 나가사키 역 건너편의 아사히마치 점이었다. 저녁 오픈 직전이라 잠시 대기 후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나가사키에서 많이 알려진 돈가스 가게로, 소위 말하는 '인생 돈가스'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흠집을 잡기 어려운 맛이었다. 살면서 먹었던 가장 맛있는 돈가스냐고 하면 바로 고개를 끄덕거리진 못하겠지만, 상위권에 있다는 것도 확실했고, 부족한 점을 따로 느끼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맛있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는 나가사키 역까지 걸어서 이동했고, 나가사키 역 앞에서 트램을 타고 하마노마치 아케이드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해가 졌는데, 집으로 향하는 시민들로 트램은 북적북적했다. 5명이 다녔던 우리는 조용히 각자 자리에서 트램 창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번잡한 트램 밖으로 보이는 나가사키 시내의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일상 속에 내가 잠시 끼어들은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날 나가사키는 조금 흐렸다. 아케이드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었고, 나가사키는 도쿄같은 곳보다는 일찍 문을 닫는 도시였지만 그래도 몇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케이드는 일본 도시마다 있는 곳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다. 밝은 조명을 뿌리는 마트나 드럭스토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카페와 햄버거 프랜차이즈, 각종 잡화점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고 사람들은 느린 듯 빠른 듯 시장을 돌았다.
아케이드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이게츠도'였다. 130년에 달하는 전통을 가진 과자/베이커리 전문점이었다. 2층에선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늦어 닫은 상태였고, 물건들만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을 둘러보며 각자 몇 가지 기념품을 샀다. 전통도 좋았지만 가격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곳에선 방문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 좋았다.
가게들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분메이도'를 들렀다. 나가사키엔 흔히 '3대 카스테라'가 있다. 분메이도, 후쿠사야, 쇼오켄이다. 나가사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개항지로서 서양 문물이 일찍부터 들어왔는데, 그 영향 중 하나가 '카스테라'의 발달이다. 포르투갈 인들이 먹던 빵을 일본에 맞게 조금 변화시켰는데, 나가사키 카스테라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주요한 포인트는 '상단에 붙은 설탕 결정'이 되겠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3곳 모두 맛을 봤는데, 개인적인 느낌은 이랬다.
후쿠사야 : 원조 나가사키 카스테라 집. 1624년에 오픈했으니 400년에 달하는 전통을 가진 곳. 이후 본점에도 들렀는데, 아무래도 가장 '원조'라는 포스를 내뿜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맛있었다.
쇼오켄 : 후쿠사야와 비슷하게 1600년대에 오픈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초코 카스테라와 같이 더 과감한 변주를 준 점이 기억에 남는다.
분메이도 : 가장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맛에 가깝다. 보편적이라서 특별함은 떨어질 수 있지만, 나중에 찾아보았을 때는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가장 널리 알린 브랜드라고 했다. 1900년에 오픈했다.
분메이도에서 같이 간 친구들끼리 먹을 카스테라를 하나 사고 다시 역으로 돌아갈 트램을 탔다. 아케이드를 나설 때 즈음은 대부분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도시의 불은 일찍 꺼졌지만, 활기를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았다. 밤이 되자 트램은 더더욱 눈에 잘 띄었다. 개인적으로는 나가사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모습이다.
원래 계획은 나가사키 역 인근에 있던 야키토리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다만 5명이나 되는 인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이후 몇 군데를 더 방문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대부분 매장이 크지 않다 보니 애초에 5인 테이블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야키토리를 포기하고는, 편의점에서 일본 컵라면이나 여러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트램으로 숙소에 가장 가까운 정류장(종점이었다)까지 이동하고는, 택시를 탔다.
이후엔 숙소로 돌아와 대욕탕을 이용했다. 야외 노천탕이 문을 닫아 실내 탕을 이용했는데, 2개 있는 곳 중에 창밖으로 시내가 보이는 곳은 크기가 작았다. 이용하고 나와 숙소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나가사키 시내 야경을 구경했다. 나가사키 야경은 일본 내에서 '3대 신 야경'으로 인정받는다고 하는데, 따로 전망대에서 보았던 것이 아니다보니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진 풍경은 썩 괜찮았다.
아래는 밤에 보았던 숙소의 사진. 숙소가 산 속의 높이에 따라 다르게 지어져 있어, 입구에선 그 전체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밤에는 친구들 5명이서 다 같이 한 방을 쓰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수련회에 온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조식을 먹었다. 그동안 먹었던 다양한 숙소의 다양한 조식들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었던 것 같은데, 일단 연식이 느껴지는 서브 연회 홀(?) 같은 공간이었다. 뭔가 연회 홀로 만들었지만 화려하지는 않고, 정말 기능에 충실한 듯한 느낌인데 20-30년 전에 이 공간을 만든 채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하얀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 3개에 간단한 아침 메뉴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일식이었고, 군데군데 양식 음식이 있었다. 급식판 같은 곳에 받는 형식이었는데, 두 번 정도 받으면 모든 메뉴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음식의 맛이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괜찮은 조식이었다. 무엇보다, 묘한 가족적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들어서자 마자 모두가 우리를 쳐다 봤는데, 누가봐도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인이었고, 가족 단위나 나이가 있는 부부였다. 우리가 들어서서 음식을 받기 시작하자 원래는 자가 배식이었던 카레/생선 쪽에 할머니가 오셔서 직접 우리에게 음식을 퍼주었다. 빵을 굽는 토스터는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숙소에서 쓰는 것과 다른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빵이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내가 헷갈려하자 건너편의 남자 아저씨가 손짓으로 나왔다고는 알려줬고 내가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자 서로 웃어보였다.
조금은 느리고, 평화로운 분위기였고, 여유로웠다. 대화가 오가기보다는 대부분 조용히 밥을 먹는 느낌이었고, 우리 역시 졸음을 밀어내며 작은 소리로 가끔 말을 나눌 뿐이었다. 그 묘한 주말의 느낌, 잘 차려지고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은 5성급 호텔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단촐한 집밥에도 즐거움을 느끼니까. 그 조식의 분위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홈페이지를 보다보니 1954년에 개관한 곳이라고 하니, 그 분위기가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식을 먹고는 방을 정리하고(이곳은 다른 료칸과 다르게 조식 시간 동안 방을 치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저녁에 이부자리를 펴주는 서비스도 없다),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는 송영 서비스를 이용해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 역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의 나가사키는 맑았다. 역의 코인 락커에 짐을 맡기면서, 어제와 같이 1 day 프리 패스 표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직원 분이 기쁜 이야기를 들려줬다. 'today is free!'.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트램이 무료라는 얘기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활성화 차원에서 날짜를 지정해 무료를 하는 건데, 마침 우리가 있던 1/28이 해당하는 날이었다. 그 다음이 3/10이었으니 운이 좋았다.
트램을 타고 이동한 곳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기념관이었다. 나가사키 역에서 위쪽 방면으로 한번에 갈 수 있었다. 내려서는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원폭에 피폭될 경우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하여, 그 피해자를 기릴 때는 물을 부어주는 식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실제 건물로 남아있는 기념관은 아니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가장 주된 목적지는 조선인 피해자 위령비였기 때문이었다.
기념관 주변엔 공원처럼 만들어져 있고, 전시관도 여럿 있지만 조선인 피해자 위령비는 그 주변 외곽에 덜렁 놓여져 있다. 알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찾지 못할 곳이다. 우리도 정확히 이곳이 맞나?하면서 조금 둘러보아야 했다. 이건 아무래도 일본 측에서 강제 징용 사실에 대해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였다. 이 위령비 역시 살아남은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건립한 것이었다. 2만여 명이 피폭당하고, 1만 명이 폭사했다는 대목에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위령비에는 이미 물들이 놓여져 있었다. 저 위령비에 물을 부으며, 극심한 갈증을 겪으며 죽어간 재일조선인들을 위해 묵념을 했다. 박물관 내부가 아니라 바깥 한 켠에 놓여져 있는 현실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단 조선인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생됐다. 어느새 수십년이 지나 그 흔적은 도시에서 찾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기록으로 남은 역사는 그 당시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담았다. 역사를 마주보는 것, 그것도 양 국가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가 묵념을 하는 동안 누군가가 힐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후엔 차이나타운 쪽으로 이동했다. 기념관에서 차이나타운 쪽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어제 저녁에 들렀던 거리 쪽으로 가야한다.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는 건 비효율적이었지만, 그래도 나가사키 여행에서 충분히 가치있는 방문이었다. 트램은 사람이 많았다. 무료라는 소식에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탄 듯 했다. 트램을 기다리는 와중 말을 걸었던 할머니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보고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몇 가지 알고 있는 한국어를 이야기했다. 그분은 인삿말과 숫자 정도를 말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일본어를 잘 몰랐기에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이 느껴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위에 적었던 3대 카스테라 중 하나라는 후쿠사야였다. 가장 원조 집이고, 가게 내부도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선 선물용으로 카스테라를 샀다. 한 가게가 400년 동안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생각했다. 물론 그건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더듬어보게 된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개인적 욕망이 스러져 갔을 것이지만, 과거의 것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것에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의미라는 말에 수많은 의미가 다시 담기게 되지만 말이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먹었던 후쿠사야 카스테라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들었다.
이후엔 차이나타운의 가게를 방문했다. 가장 먼저 갔던 곳은 줄을 서야 해서, 그 옆옆에 있는 가게로 갔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한참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난 곳은 아니었지만 크게 실패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나가사키 짬뽕을 비롯해 다양한 중식 메뉴를 시켰고, 사라우동도 주문했다. 가장 맛있었던 건 사라우동이었다. 사라우동은 중국 문화권에서 만날 수 있는 차오멘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바로 튀긴 면을 쓴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산물을 익힌 다음 녹말을 풀고는 튀긴 면 위에 그대로 얹은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튀긴 면 위에 뜨거운 음식을 얹어 부드러워진 면과 재료의 궁합이 좋았다. 간도 짭짤한 편이라 취향에 맞았다.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가 아는 익숙한 맛과 흡사한데, 거기서 매콤한 맛을 빼면 딱 나가사키에서 먹은 맛이었다. 충분히 아는 맛이지만, 매운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국식 현지화가 더 입에 맛는다고 할까. 다만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나가사키 짬뽕이라, 그걸 직접 체험했다는 점에선 즐거웠다. 나가사키 짬뽕은 나가사키에 있던 중국 화교가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복건성에서 먹던 음식을 변형했고, 그 과정에서 나가사키에서 구하기 쉬운 각종 해산물이 추가됐다. 싼 가격에 좋은 영양소를 주려고 만들었던 이 음식은 일본인에게도 인기를 끌었고, '나가사키 짬뽕'은 그렇게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도 '나가사키 짬뽕'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한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얼큰한 맛이 추가됐다. 음식은 사람을 따라, 지역을 넘나들며 그 모습을 바꾼다. 그 변화는 '오리진'을 중시하는 이들에겐 '어디 감히'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음식을 먹는 현지의 사람들에겐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복건성의 중국 음식은 나가사키에서 '짬뽕'으로 태어났고, 유명해지며 '나가사키 짬뽕'이 됐고, 그 이름 그대로 다시 한국에 들어와 매콤한 맛을 품었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역사를 한 그릇으로 만날 수 있으니,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가게를 나와서는 다시 트램을 타러 갔다. 차이나타운 분위기로 가득한 길거리를 지나 다시 나가사키 역으로 향했다. 나가사키는 번잡하지 않다. 가장 바쁜 곳도 '활기찬' 수준이다. 그 정도가 맘에 들었다. 소도시라고 하기에 나가사키는 충분히 크지만, 대도시보다는 여유를 품고 있다. 이 도시 안에 담긴 다양한 역사도 좋았다. 시간이 없어 방문하지 못했지만, 나가사키엔 서양인이 남긴 유적도 많다. 일본에서 찾기 힘든 천주교회를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몇백년 전부터 각 국의 사람들이 뒤엉키며 쌓인 흔적을 따라가는 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실 그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좋아하기도 하고, 자주 이용하기도 했던 트램이기도 할 것이다.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물렀지만, 나가사키는 3일을 머물렀던 후쿠오카보다 더 강한 인상으로 남은 도시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군함도, 일명 '하시마 섬'도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역사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나가사키에서 강제 징용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지금은 평화로워진 이 도시에 수십년 전엔 '지옥'이 있었다. 그 자리를 방문하는 일은 여러 감정을 뒤섞이게 했다. 충분히 아름다워진 이 도시를 미워할 순 없겠지만, 그와 별개로 역사에 대한 물음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찾아보니 나가사키에는 민간단체가 참여한 역사관도 있어 일본인 단체가 기록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이야기였다.
나가사키 역에 돌아와 캐리어를 찾고, 짧은 시간 동안 기념품을 샀다. 3대 카스테라 중 하나인 쇼오켄은 나가사키 역에 입점해 있다. 선물을 사는 공간 한 켠에 위치해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초코 카스테라가 유명한 곳이기에 초코 카스테라를 구매했다. 열차 탑승을 앞두고 한 바퀴 역을 둘러보고는 후쿠오카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나가사키에선 다른 어디에서 보다 현지인과 대화를 할 일이 많았다. 그들은 내게 먼저 다가왔고, 호의를 보였고 기분 좋은 대화들을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 이곳에 남은 우리는 좋은 기억을 쌓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사소한 교류는 여행의 기억에 한 줄기 남다른 수를 놓는다. 나가사키가 그랬다. 나가사키 여행은 즐거웠지만, 아직 이곳에 남아 해결되지 않은 역사처럼 여러 감정이 뒤섞여 마음은 복잡했다.
이곳엔 다시 와보고 싶다. 그 때엔 이 도시 곳곳에 있는 단어인 '평화'란 말에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이들도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복잡한 사람과 역사를 품은 이 도시가 모든 이들에게 편한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서양인과 중국인, 조선인이 뒤섞였던 이곳의 진면모를 더 알아가면서. 잔인한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