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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균형 잡힌 삶의 식단을 갖고 계신가요

by 다이안 Dyan

최근 근육량 부족을 몸으로 깨닫게 되어 PT와 함께 식단을 시작하게 됐다. 이전에는 환경과 채식에 관심이 많아 혼자 먹는 식단에서는 육류를 최대한 피하곤 했다. 그래서 진행하는 식단에서도 최대한 육류는 피하면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방법을 궁리해서 식물성 단백질 파우더와 단백질바 등을 구비해두며 챙겨 먹으며 노력했다. 하지만 정말 ‘나름’의 노력이었나 보다. 나의 인바디 결과는 늘어야 하는 근육량은 안 늘고, 체지방량만 늘어버렸다.


PT선생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 청개구리 같은 인바디 결과는 나의 식단이 불균형하여 초래됐음을 알게 됐다. 그동안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내 평소의 식사가 그토록 탄수화물 부족형의 식사라는 것을. 탄수화물 부족형의 식사는 결국 내가 꾸역꾸역 먹는 단백질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하기 바빴다. 그래서 근육이 될 단백질이 남지 않게 되니 나의 근육량이 늘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양소가 불균형한 나의 식사는 근육량 성장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두 달간의 인바디 결과를 보면서 그놈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 녀석인지를 다시 깨닫고 있다. 균형이란 녀석은 참 다방면으로 신경 써야 하는 녀석이다.

일과 삶의 균형.

조직 내에서 구성원 사이의 힘 또는 세력 간의 균형,

적당한 스트레스를 위한 긴장과 여유 사이의 균형,

세상에는 지켜야 할 혹은 지키는 것이 좋은 다양한 균형이 존재한다. 그렇게 균형이라는 것은 삶 곳곳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외줄 타기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최소 전치 N주, 최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균형 잡기란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조금만 내 몸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삶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게 되는, 그런 아슬아슬한 일 아닐까.




내 몸뚱이에 대한 고찰이 결국 직장생활로 이어지다니…. 이제 천상 직장인 다 됐다 싶은 마음이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일에 내 삶을 잃어봤고, 그 결과 돌아온 것은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다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내가 그렇게 일과 팀에 올인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곳에서 더 오래 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왜 내 불균형한 식단이 만든 결과를 생각하다 떠오르는지… 참 알 수 없는 나의 정신세계다.


일과 팀에 나 자신을 곱게 갈아 넣어 바치던 당시의 나는 팀장님에게 마음의 부채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해당 직군에 대한 팀의 수요와 입사 지원한 직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신입사원의 공급이 맞았기에 이루어진 전보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좀 특이한 애였다. 입사 지원 당시의 직무와 다른 직무를 받았다며, 꿋꿋이 내 전공 직군에서 일하게 해 주는 게 맞지 않냐며 소위 말하는 윗분에게 제 뜻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새파란 신입이었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더니 정작 그렇게 원하던 전보를 한 주 앞두고선 돌연 퇴사를 외치던 신입. 바로 그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신입이 나였다. (물론 퇴사를 외친 사유는 있었지만, 구구절절이라 이번엔 생략하겠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일할 때는 미처 몰랐다. 내가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내가 우울한 게 맞는지를 말이다.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입사 1년을 갓 넘긴 햇병아리였던 나는 어쩌다 보니 팀 내 차석과 같은 위치를 맡아 역할과 업무량에 허덕이면서도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입사 순으로 봐도 나밖에 차석이 없었고, 업무와 전공의 유사성을 봐도 팀 내에 남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역할과 체할 수밖에 없는 업무량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업무를 잘 소화해내는 것이 팀장님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나 자신에 대한 것보다 일과 팀이 우선순위 었다.




잘못된 우선순위는 그렇게 나를 서서히 좀먹고 있었다. 평일 오전에 서류 작업을 하다가 오후에는 현장 일을 하러 나가곤 했다. 그렇게 8시간을 쪼개 쓰다 보니, 서류 작업이 태반인 사무 업무를 쳐내기엔 늘 업무 시간이 부족했다. 평일이면 야근을, 주말이면 당직 또는 주말근무를 하면서 헐떡 헐떡 업무를 쳐내기 바빴다. 그렇게 나의 팀과 일이 1순위가 되어 는 동안 나의 머리와 마음은 이미 과부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을 합리화당하기 바빴다. 몹쓸 주인은 머리와 마음이 죽겠다는데도 “어차피 여기선 취미생활도 자기 계발도 불가능하잖아. 차라리 돈이나 벌면 다행이지”라고 가스라이팅 하고 있었다. 당시의 근무지가 저기 저 시골 어딘가였다는 사실을 그렇게 이용했다.

서울의 친구들이 필라테스를 다니고, PT를 다니며 몸을 가꾸고, 각종 문화생활과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걸치며 스트레스를 풀러 다닐 때, 나는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차로 15분 걸리는 곳에서 홀로 책임감과 업무량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끝없는 합리화와 함께 이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것이라고.


물론, 팀 내에서 이런 나의 노력과 수고 대한 인정을 받으며 뿌듯함도 느꼈다. 팀장님도, 과장님도 모두 그런 날 인정해주었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날 챙기려 하곤 했으니까. 그저 나 자신이 날 챙기지 않고 있었을 뿐…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사와 조직 내에서의 인정, 그렇게 커진 자부심도 날 지켜주지 못했다. 순간순간 헛헛한 마음과 함께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곤 했다. 오전의 한정된 시간 동안 사무 업무를 미친 듯이 쳐내느라 화장실도 못 가며 일을 하던 마침내 화장실을 가려 몸을 일으켰더니 전화벨이 울리는 때라던가. 폭설 중의 제설작업 마냥 아무리 문서를 쳐내도 숨 돌리면 다시 쌓여있는 일거리를 볼 때라던가. 시스템 상에 내가 만든 문서들로 가득한 페이지를 볼 때라던가. 뭐 그럴 때 말이다. 그리고 점점 그런 생각이 찾아드는 주기는 짧아지고, 점점 생각의 정도는 깊어만 갔다.




이런 나의 번아웃 비슷한 증상을 없애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길은 삼삼오오 모이는 회식자리에서 술을 홀짝이는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몸도 많이 망가져 가는 것을 쉽게 느끼곤 했다. 도시사람처럼 전문적인 운동을 할 수 없을지 언정 뭐라도 해야겠어서 유튜브의 운동채널을 따라 홈트레이닝을 주 2~3회 하곤 했다. 나의 쓰레기 같은 체력을 실감하면서 그래도 운동을 할 때만큼은 동을 따라 하기 바빠서 잡생각이 나지 않아 좋았다. 그제야 수없이 읽었던 운동이 심리 상태에 끼치는 영향, 심리적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 등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tea) 원데이 클래스도 가면서 나름의 취미생활을 즐겨보려 했다. 그 시골에 꽃차집이 있었고, 원데이 클래스처럼 강습도 있다는 말에 관심 있는 동료와 함께 뿌리채소 차 만들기를 했었다. 겨울이라 꽃으로 못 한 것은 아쉬웠지만, 비트와 우엉을 다듬고 덖는 과정이 좋았다.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거듭하면서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따뜻한 팬 위에 장갑을 몇 겹 낀 손으로 잘게 잘린 우엉과 비트를 휘적휘적 쉼 없이 섞어 주는 과정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좀 더 배워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꽃차집이 폐업해서 그렇게 취미가 되기도 전에 접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 나를 위한 활동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뒤늦게나마 나 자신을 지키려고 나도 노력했지만, 한 번 지쳐 쓰러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를 소진해가며 잃어가는 것이 너무 아파서 나의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 직장에서 보낸 2년의 시간 동안 깨달은 교훈이 있다면, ‘나’를 잃고선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과 얻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균형 있게 들어간 식단이 중요한 것처럼, 건강한 직장생활을 위해서 3가지 모습의 내가 균형을 잘 지켰어야 했던 것이다.


탄수화물 같은 첫 번째 ‘일하는 나’는 포도당이 되어 우리의 장기와 대사작용을 하듯이, ‘일하는 나’는 우리 삶의 포도당이기도 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그런 존재이다. 몸의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태워 우리가 활동을 하듯이, 일을 열심히 태워내며 삶을 영위할 경제적 기반을 만든다.

하지만 탄수화물만 태워서 부족하면 단백질을 끌어다 쓰듯이, ‘일하는 나’가 힘에 부치기 시작하면 ‘일상의 나’를 끌어온다. 근육과 호르몬의 주원료인 단백질처럼 ‘일상의 나’는 모든 나 자신의 기초이자 원료가 된다. 일상이 무너지면 파도에 쓸려 무너지는 모래성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곧잘 무너지곤 하니까 ‘일상의 나’를 너무 보통의 존재로 취급해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체온을 유지하고 몸속의 장기를 보호해주는 몽글몽글 지방 같은 ‘꿈꾸는 나’는 현실의 냉기로부터 따뜻한 인간미를 지키고, 무한 꿈꾸게 한다. ‘꿈꾸는 나’를 지켜낸다면, 현실에 치여 미래와 꿈을 사치라 생각하는 메마른 사막 같은 어른이 되진 않을 것이다.




‘워라밸’ 참 질리게 들은 단어인데,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다. 삶의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 삶에도 균형잡힌 영양분이 필요하다. 3대 영양소처럼, 우리는 그 균형을 지켜내야 건강한 직장인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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