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꿈같은 독립출판

첫 책을 만드는 시간과 감정의 기록

by 다이안 Dyan


처음으로 책을 만들어내던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좋아하는 것을 담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쓸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지난 11월, ‘30편만 쓰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나의 글은 42편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를 쓰고 있으면 다음에 쓰고 싶은 일과 주제가 쉼 없이 떠올랐다. 스치는 생각을 놓칠세라, 핸드폰 메모장을 채우기 바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그 시간은 행복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열다섯 살이 되기도, 스무 살이 되기도 했다. 내 삶의 모든 페이지를 함께하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때로는 피식거리며, 때로는 흐뭇하게 웃으며 글을 썼다.


사랑하는 것들을 담아내려 하니 욕심이 밀려왔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고 싶었다. 글의 수만큼 양도 불어났다. 사랑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몰아쳐 글자수를 끝없이 채워나가게 했다. 평소에는 한 장을 조금 넘겨 쓰던 글이었는데, 이번엔 쓰고 나면 기본이 두 장이 돼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전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담아내는 것은 쉬웠다. 그리고 쉬운 만큼 어려웠다. 더 잘 표현하고 싶었고, 더 잘 기억하고 싶었다. 행복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머리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

꿈. 이 한 글자가 때로는 설렘을, 때로는 고뇌를 안겨준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퇴근 이후의 휴식과 맞바꾼 그 시간들이 싫지 않았다. 명절 연휴, 침대에서 맛보는 여유 대신 노트북 앞에서 보낸 그 시간이 좋았다.


회사는 회사대로, 개인사는 개인사대로 괴로웠던 나의 1분기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내 책이었다. ‘내 책’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버텼다. 일상이 괴로울 때면, 내 글만 바라보며 달렸다. 경주마처럼, 내 책의 완성만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고됨을 잊으려 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한 페이지씩 완성해 나가는 재미를 느꼈다. 뿌듯함에 혼자 작은 방에서 미소 지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을 손으로 구현해 내고,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 혼자 작은 방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아직 세상은 살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점점 내 상상을 현실의 실체로 만들어 간다는 것에 기뻤다. 설렘과 고뇌의 시간 사이에서 몸은 지쳐갔어도, 마음만은 생기 가득한 시간이었다. 몸과 마음은 서로 명백히 다른 존재임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후후 불면은 판이 커지는

흐려져 가는 기억을 잡아보려는 손짓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해보려던 노력이었다. 그런 내 작은 손짓과 노력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신기했다. 나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내 글에 공감해 주는 것이. 그리고 감사했다. 내 글을 원해줘서. 그리고 욕심이 났다. 내 글을 사고 싶다는 소수의 몇 명을 놓치기 싫었다. 글쟁이의 욕심이 감사한 마음을 만나자, 점점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이 일을 크게 불려 나갔다. 조금이라도 단가를 낮춰주고 싶은 마음에 판매와 유통까지 고민하게 됐다. 열 권이라도 더 찍으면 내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500원이라도 덜 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인디펍에 입고신청을 했다.


입고 확인 메일과 함께 날아든 기획전 제안 메일을 덥석 물었다. 이번에는 25주년의 마법에 빠진 팬심과 글쟁이의 욕심이 만났다. 어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들과 함께한 이 시간을 어디까지 자랑할 수 있나 해보고 싶었다. 작은 팬심을 인터넷 세상을 넘어 현실에 내보내고 싶었다. 우리의 25주년을 이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통장에 싱크홀이 생기는 줄도 모른 채, 일을 후후 불어 키워냈다.




내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

애초에 판매와 유통을 생각하지 않고 만든 책이었다. 그렇다 보니 생산원가를 낮출 방도가 없던 결과물이었다. 본전 치기라도 할 수 있는 정가를 잡으면, 아무도 사지 않을 금액이 됐다. 그래서 난 의미를 살리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내 첫 책을 완성해서, 판매까지 체험해 본다는 의미.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기억과 마음을 공유한다는 의미. 비록 마이너스로 끝나는 결과일지라도 그 길을 택했다.


풍선을 불고 불다 보면 펑하고 터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싱크홀이 생긴 통장을 뒤늦게 살펴보니, 더 이상은 무리인 순간이 찾아왔다. 글쟁이는 속상했다. 내 글을 읽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데도 추가 입고를 시킬 수 없는 현실에 속상했다. 비루한 내 자본력은 더 이상은 안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의 입고가 불가하니, 품절처리 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현실과 타협한 속상한 마음은 다음날 봄날의 눈처럼 사르르 녹았다. 속상함 그득 담아 메일을 보낸 다음날, 인디펍의 인디출판 계약 제안을 받았다. 제안 메일을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의미를 깨닫고선 방에서 냅다 환호성을 질렀다. 내 책에게 이젠 내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걸어 나가라고 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에겐 작은 계약일지라도 나에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계약. 글을 사부작거리며, 언젠가 한 번은 만나고 싶던 단어였다. 팬심의 농도가 짙었고, 첫 책이었기에 내가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그런데 나에게 다가왔다. 그 금요일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책상 위에 폭 엎어졌다. 이 책 한 권을 위해 달려왔던 내 시간이, 노력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천천히 편안해졌다. 덜컹덜컹 흔들리던 기차를 이제야 안정궤도에 올린 기관사가 된 것처럼, 드디어 내 책에게도 안정을 선물해 준 것 같아서 안도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에 취해, 독주 같은 현실에 취해, 3월을 보내다 보니 드디어 4월이 됐다. 인디펍에 입고가 되면서 받았던 영풍문고 기획전 메일, 내 가수와 내 책을 함께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여 덥석 물어버렸던 그 기획전이 다가왔다. 가장 친한 친구인 김민을 데리고 찾아갔던 영풍문고 종로본점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내 책을 찾았다. 내 책이 대형 서점에 전시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빠르게 찾아온 행운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실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책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큰 서점에 놓이기까지 하다니. 제 자식 보듯이 흐뭇하게 내 책을 바라보다가, 사진으로 남기자는 김민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이 행복한 순간을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나면서 소심한 악동이 됐다. 내 책에 우리의 25주년을 축하하는 토퍼를 꽂아놓고선 들킬세라 후다닥 도망쳤다.


겨울바람 같은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한, 봄날의 햇살 같은 독립출판이었다. 그렇게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간이 3월의 내 행복을 책임졌다. 여전히 이 작은 성취가 날 행복하게 하고 있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시간을 쪼개며 달려온 5개월의 시간을 행복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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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책이 어딘가에 선정된 소식을 받아 그저 뿌듯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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