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는 첫 만남의 시간을 채우는 어색한 공기를 못 견디곤 했었다. 그래서 대학교, 대외활동, 교육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의 자리 선정은 내게 매우 중요했다. 어색한 공기는 못 견디면서 그렇다고 붙임성 좋은 활달한 성격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옆자리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트며, 한 명이라도 편한 사람을 만들려 했다.
어영부영 새로운 해를 맞이한 지 어느덧 이주쯤 흘렀을 때였다. 약 일 년 가까이 식물원에서 교육생으로 교육을 듣고 실습을 진행하는 교육과정의 첫날이었다. 서로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고,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다른 교육생들은 모두 저문 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숙사를 신청한 몇 명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식물원, 수목원들이 대부분 그렇듯 대중교통으로 날마다 출퇴근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거기다 실습까지 더해진다면 통학하는 것이 고난 행군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기숙사 안내를 받기 위해 어색한 이들과 함께 어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말없이 걷는 것이 뻘쭘하여 옆에서 걷던 이에게 아는 체를 해봤다. “자기소개하실 때 사투리 쓰시던데, 어디서 오셨어요?” 나름대로 관심을 담은 인사말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꽤 애를 먹었다.
“네? 저 사투리 써요?” 경상도 억양 그대로 되묻는 답변이자 질문에 웃음이 터질 뻔했는데, 곧이어 흠칫하며 소심해진다. 내가 실례를 범한 걸까 싶었다. 서울깍쟁이 같은 첫인상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웃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지금도 쓰시는 거 아니에요? 억양이 경상도 사투리 같아서 경상도 분인 줄 알았어요. 아니었으면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저 경상도 사람 맞아요. 집은 김해예요. 서울 사람처럼 말한다고 한 건데! 경상도 억양이 아직도 있어요?” 앳된 얼굴로 눈을 땡그랗게 뜨면서 묻는 말이 귀여워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풉-하고 터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입을 가리고 대답했다. “네~지금도요!” 그게 10개월을 함께 같은 방에서 동고동락한 서지와의 첫 만남이었다.
풋풋했던 첫 만남이 어느덧 7년 전이다. 한 방에서 거의 24시간을 가족처럼 살며 하나의 꿈을 그리던 시간을 보냈다. 식물을 공부했고, 식물이 좋아서 가드너가 되고자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종일을 쭈그린 자세로 밭매는 아낙네가 되곤 했다. 달과 별이 찾아오는 시간이면 식탁에 둘러앉아 생소한 라틴어인 식물 학명을 외웠다. 여유가 있는 저녁이면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외식으로 고된 하루를 털어내며 서로의 버팀목이 됐다. 하나처럼 지내던 그런 시간을 지나, 한 명은 세종특별시 그리고 한 명은 인천광역시에 살며 각자 다른 삶을 그리고 있다. 7년 전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던 이야기는 카톡 메시지가 대신하게 됐다. 그때의 즉흥적인 외식과 나들이는 이제 한 달 전에 미리 잡는 일정이 됐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변화에 익숙해진다. 그럼에도 같은 방의 이층침대에 살면서 쌓은 수다와 서로를 향한 관심은 지금도 꾸준히 만남을 기획하게 한다.
주로 그 만남은 공연과 전시를 좋아하는 둘의 공통된 취향으로 이루어진다. 아직은 문화생활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곳은 서울이기에, 종종 서지는 세종에서부터 서울까지의 긴 여정을 갖는다. 겨울에는 캣츠로 고양이 세계의 춤과 음악을 극장에서 즐겼다. 그리고 조금은 뿌연 가을 하늘 아래 우리는 미술관 앞에서 서로를 맞이한다. 세종시보다 멀리서 온 영국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을 감상하는 중, 둘의 관심이 하나의 초점에 맞춰진다. 모네의 수련, 그리고 반고흐의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서로 다른 곳에서 삶을 살아도 우리는 시작으로 돌아온다.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던 식물과 자연으로. 어쩌면 우리의 미래도 그렇게 자연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감이 든다.
“언니, 아프리카 여행은 관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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