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민]
[와… 김민…]
30대 직장인 둘의 카톡 채팅방은 짙은 한숨과 깊은 분노로 시작하곤 한다. 양민과 김민은 각자의 모니터 오른쪽에 뜨는 작은 창을 보며 떠올리며 생각한다.
‘오늘은 저쪽 부장은 무슨 사고를 쳤길래 김민의 화를 돋운 것인가.’
‘오늘 저쪽의 신입은 무슨 말을 했길래 양민의 어이를 앗아간 것인가.’
그렇게 둘 중 하나가 분노를 토하기 시작하면서 대화는 시작된다.
[미친 거 아니냐? ㅋㅋ]
[우리가 이상한 거냐??]
왜 회사는 오늘도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일까. 언제까지 우리는 그쪽 상사 vs 이쪽 상사의 경연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들의 카톡 끝인사는 항상 똑같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
서로의 뒷담화에 공감과 이해를 베풀어 주는 상대가 되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대화가 끝이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두 직장인이 언제나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둘의 공통 관심사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면 곧잘 깔깔대고, 아쉬움도 표하고 기대도 나타낸다. 그중 하나가 여자 풋살, 축구이다.
한창 ‘골 때리는 여자들’을 보면서 양민은 축구에 대한 열정을 피워내는 여자 연예인들을 동경했다. 다들 어리지 않은 나이에 접한 스포츠를 진심으로 배우고 치열하게 하는 모습이 멋졌다. 주변에 누가 이 프로그램을 보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가까이 있었다. 그게 바로, 김민이었다. 여전히 축구에 관한 이 둘의 지식수준은 안정환 선수가 반지에 키스를 날리던 2002년의 월드컵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지식으로도 구척장신과 아나콘다의 풋살 경기를 보는 데는 지장은 없다. 이해할 정도면 됐지! 즐기고 있는 것을 공부하다 재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있는 지식의 형편에서 스포츠를 즐기기로 했다.
회사 뒷담화나 하던 이들의 수다 판이 골때녀 풋살 경기로 바뀌었다. 구척장신은 선수 하나, 하나가 길쭉하니 멋있는데 서사까지 갖추고 있어 완벽하다고 양민이 말한다. 맞아, 맞아 대답하던 김민이 묻는다.
“양민, 그래서 응원하는 팀은 정했어?”
“아니, 너는?”
“나도 아직”
“우리가 과연 한 팀을 고를 수 있을까?”
“못한다에 한 표!”
양민과 김민, 이 둘은 이미 응원팀을 정하지 못 한 채 방랑하는 여자배구 팬이기도 했다. 선택하지 못 한 역사는 꽤 깊었다. 좋아하는 것 중 좋아하는 것을 다시 선택하는 일은 힘들다. 고민하고 고뇌해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양민과 김민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늘어나고, 그 안에서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요즘 양민은 글을 쓰고, 김민은 사부작사부작 뜨개를 한다. 양민은 책을 읽고, 김민은 피아노를 배운다. 그리고 양민과 김민은 함께 뮤지컬 공연장을 향한다. 일 빼고는 다 재밌는 서른이들이다. 대학 때부터 뽀로로가 롤모델이라고 외치던 이 둘은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뽀로로를 동경한다. 노는 게 제일 좋은 이 펭귄처럼 매일매일 친구들이랑 놀며 매일 새로운 것을 하며 지내보고 싶다고 푸념한다. 순전히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한 생각이다.
재미와 즐거움이라는 단물만 뽑아 먹고 싶어 하는 이 꿀벌 같은 서른이들은 그래서 여전히 무엇 하나 깊이 아는 것은 없다. 하지만 깊이 알지 않아서 더 재밌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함일 뿐이다. 타인에게 뽐내기 위함도 아니고 가르쳐주기 위함도 아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것은 직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던가. 우리의 취미까지 그 반열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른이들은 올해도 선택보다는 선호를 즐기기로 했다. 모든 것이 선택과 결정으로 끝나는 삶은 너무 팍팍하다나 뭐라나! 언제 다시 이 둘의 주제가 다른 종목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변하지 않을 한 가지는 있다.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마음, 이 둘의 이런 마음만은 불변할 것이다. 앞으로도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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