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06.
가끔 이런 혼잣말을 한다. “누가 나 좀 로그아웃 시켜주라.” 실제의 내가 그저 하나의 게임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며 하는 말이다. 왜 아무리 재밌는 게임이더라도, 할 때마다 ‘WIN’을 보는 게임이더라도 그럴 때 있지 않나. 어느 순간 질리고, 재미가 없고 지겨워질 때 말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나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의 재미는 못 느낄 때면, 머릿속에 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내가 가상의 한 캐릭터라면’이라는 상상을 펼치며 생각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성격과 능력치로 그의 삶을 경험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럼 끝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깎아내리는 현대인에게 좋은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 알고 보니 타인의 삶도 녹록지 않았고, 밝게 보이는 외면 너머에 빛을 위한 어둠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는 이처럼 타인의 삶을 내 삶인 듯 살아가며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배우다. 배우들이 극 중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가 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어벙한 모습을 하다가도, 다음 작품에서는 날카로운 형사가 되어 나타난다거나. 노란 튤립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다가도, 어느샌가 처연한 한 송이 국화가 된다거나 말이다. 배역 따라 새로운 캐릭터를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되돌 수 있는 배우가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이런저런 삶을 짧지만 깊게 살아보면, 진짜 내 삶은 조금 더 지혜롭게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 그때의 교훈을 통해 실패와 고난은 피하고, 슬픔과 분노의 농도는 옅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독한 악역을 맡았던 배우가 눈빛이 변했다는 주변인의 말에 놀랐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몰입했던 걸까 싶었다. 실제 본인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도록 악의 가면을 두껍게 바르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심오했을까. 배우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되는 이유는 이런 이유인 것 같다. 배우는 늘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에 맞게 본인의 모습과 성격을 재구성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 사람이 그때마다 새로운 가면과 옷으로 완벽하게 갈아입고선 딴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 그것이 참 영화 같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의 삶은 한 편의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내가 동경하는 배우 중 한 명을 연극으로 처음 만나는 날이다. 콘서트 무대 위가 아닌, 연극 무대 위에 서있는 그대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져서 머릿속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그대의 모습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었다면, 연극은 달랐다. 작은 공연장의 무대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대가 다른 사람의 삶을 그려낸다는 것을 볼 수 있다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연극 무대 위의 안데니는 더 이상 내가 아는 안데니가 아니었다. 그는 조원우였다.
습기를 머금어 꿉꿉한, 어딘지 예스러운 그 냄새가 느껴질 것만 같은 옛 영화관 ‘레인보우씨네마’. 그곳에서 원우는 짙게 쌓인 3대의 추억과 감정을 펼쳐나가게 한다. 도서관에서 느낄 법한 책 냄새가 느껴지는 영화관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사랑이 있다. 그들이 울고 웃었던 인생이 극장에 고스란히 베어 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느낌에 취해서 그대 안의 또 다른 그대를 눈으로 쫓았다. 이 기분 좋은 낯섦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상실의 아픔을 애써 태연하게 덮고 지냈던 원우가 북받쳐 감정을 쏟아내던 모습도, 맥주잔 가득 하얀 거품을 따라 내던 모습도.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바라보며 그들의 인생이 담긴 ‘레인보우씨네마’를 보내주던 모습까지도 말이다.
오늘 그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오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그대가 살아본 원우의 삶은 어땠을까. 그대는 원우의 삶 속에서 어떤 원우를 찾아서 무대 위에 그렸을까. 그대는 어떻게 원우를 그대의 것으로 받아들였을까. 원우를 그대의 것으로 만들던 그 모든 과정이 궁금해졌다. 배우로서 그대는 배역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할까. 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할까. 조명 아래 빛나는 오늘의 그대가 있기까지, 그대의 모든 시간이 내겐 호기심이 됐다.
그리고 앞으로 그대가 그려낼 무수한 다른 삶의 모습을 기대하며 설레었다. 나의 익숙함을 깨고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대가 좋았다. 새로이 그대에게 반한 첫날이었다. 그렇게 그대의 낯선 모습에 영원히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언제든 그대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고, 벅차오르고 싶다. 그리고 그대가 또 다른 어떤 삶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 그때도 내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