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민들레

by 다이안 Dyan

2월의 민들레

정월대보름 오곡밥을 맛보며 세상을 처음 만났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 회원가입을 할 때 내 생년월일을 찾아 누르다보며 알게 된 것은 그날은 월요일이었다는 것이다. 어쩐지 남들보다 생일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월요일’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을 의미하는 뜻깊은 요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작은 늘 어려우니까 어려운 요일이기도 하다. 어려운 요일에 태어나서 이리도 나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걸까?


그렇게 내가 태어난 2월, 겨울은 허한 계절이긴 하다. 푸르름을 준비하는 가로수들은 앙상한 가지만 흔들고 있고, 사실 해가 들어 맑은 날보다는 어딘지 회색빛이 감도는 하늘이 더 많은 계절이니까. 그리고 나의 탄생일과 함께하는 탄생화도 이런 2월의 공허함을 함께 하기라도 할 작정인지 두루뭉술한 것이어서 내게 실망을 안겼다. ‘야생화’. 저 들판에 마구잡이로 피어난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렇게 애매모호한 ‘야생화’가 내 탄생화라고 하더라. 전공자로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토록 실망스러울 수 없었다. 내 탄생화를 아끼고 애정 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편애하지 말고 모든 식물을 사랑하라는 뜻일까?


사실 탄생화를 찾게 된 계기는 타투 때문이었다. 나름 내게 의미 있는 첫 타투의 도안을 구상하면서 당시의 유행이던 탄생화 타투를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야생화라니*…*너무나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 탄생일인 2월에 향기로운 작은 꽃을 피워내는 가장 좋아하는 식물을 내 탄생화로 정해버렸다. 구체적인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달까. 그리고 시작을 하고 나니 중독처럼 그 해에만 타투 3개를 더 하게 됐는데, 나의 취향을 몸 구석구석에 남겼다. 그렇게 나는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눈으로 담는 것도 모자라 몸에도 담고 있는 걸어 다니는 미술관이 되었다.



도시와 자연의 풍경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자연을 택하곤 한다. 머리와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것은 바다, 숲과 같은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향도 비온 뒤의 흙냄새, 꽃 시장의 습기에 어린 향을 좋아한다. 습도 있는 대기를 좋아하진 않는데, 그 습도에 자연의 향이 어려있으면 말이 달라진다. 풀 내음과 흙 내음 사이를 채우는 촉촉한 습기. 이 조합은 캣닢에 취해 한없이 늘어진 고양이처럼 내 마음도 한껏 늘어지게 만들곤 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당신이 본 오늘의 하늘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나?” 어디선가 들은 문장인데, 꽤나 공감했어서 아직도 기억하는 구절이다. 한창 사춘기일 때 들은 문장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 10대의 나이에 뭐가 그렇게 여유가 없어서 저 문장에 꽂혔을까 싶다. 그래도 어쨌든 꽤나 인상 깊은 문장이라 종종 머릿속에 스치곤 한다. 그래서 그때마다 ‘아차’싶어서 하늘을 한 번 빼꼼 본다. 그렇게 까치발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하늘 때로는 주황빛으로 화려한 하늘을 사진 속에 담곤 한다.


사춘기 때부터 키워온 감성과 함께, 여전히 걱정과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나는 평생을 사춘기로 지낼 사람이 아닌가 싶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나고 대학에 갔음에도 난 머릿속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더니 결국 졸업 후에도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다채로운 경력기술서를 갖게 됐다. 언젠가 할머니께서 보고 오신 내 사주의 역마살은 ‘이직’을 말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당시에 그 사주풀이를 들은 할머니와 엄마의 해석은 달랐다. 두 분은 내 역마살이 외국에서 터를 잡아 일하려나 보다고 생각하셨다. 물론 두 분의 바램이 5% 정도 섞인 그 해석도 틀린 것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코로나 이전에는 명절만 되면 외국으로 쏘다니기 바쁜 손녀이자 딸이었으니까. 그렇게 내 역마살과 함께 난 여전히 앞으로의 여행도 꿈도 찾아다니고 있다. 꽃받침에 잘 붙어있다가도 바람만 잘 만나면 폴폴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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