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라뇨, 성실한 개미일 뿐입니다

by 다이안 Dyan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어떤 일을 하려고 결심을 했으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일단 해 보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라오면서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온 속담인 것 같다. 이 속담을 가장 많이 들은 이유 중 내 성격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본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기에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떡하지’로 끝나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쉼없이 소용돌이 치곤 한다. 그 소용돌이를 만드는 유인은 이왕 시작했으면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나의 강박적인 생각이다.



/ 삑, 완벽주의자입니다.

이런 내 강박적인 생각으로 인해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완벽주의자 같은 성향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의 수준이 나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오길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주의”와는 다르다고 나는 주장한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그저 꼼꼼한 편이고, 세밀한 것을 좋아하며 무언가를 실행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완벽주의자에 속하는 구석이 있음은 인정한다.

뭐 예를 들면 프로젝트의 발표자료를 만들 때, 내 작업화면에서는 격자와 안내선이 켜져있다.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이다. 발표자료 안에서 쓰이는 색상은 주요 색상, 보조 색상 그리고 강조색상 정도를 정해서 3~4개 안에서 쓰고 더 필요할 경우 최대한 같은 색상 안에서 명도, 채도를 조정한다. 같은 발표자료 안에서 쓰이는 도형은 모서리의 곡률이 똑같게 적용되도록 한다. 앞 장과 뒷 장의 도형이 묘하게 다르면 다른 사람이 만든 티가 나는 것 같달까? 이렇다보니 늘 대학교에서 과제를 하면 발표자료는 내가 만드는 것이 마음이 편했고, 조금 각도가 다르고 조금 글씨체가 다른 것들을 모조리 잡아다 수정하곤 했다. 그래서 이런 내 모습을 주변에서는 때로는 ‘집착’ 또는 때로는 ‘완벽주의’라고 평가하곤 한다. (쓰고보니 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 부담스럽게 “완벽주의자”라니

사실 이런 내 성향 덕분에 칭찬을 들을 때도 있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뿌듯하고, 내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나 이정도면 꽤 하는 사람이네!’라는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는 어쩐지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우선 부담스럽다.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걸 인정하면 항상 내가 만드는 결과물은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모든 것에 있어 그런 품질을 뽑아낼만큼 난 능력, 의지, 체력 등의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라는 단어에 깃들어있는 남을 괴롭히는 이미지가 있어 어딘지 칭찬보다는 비꼬는 의미로 해석된다. 완벽주의자는 대개 같이 일하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몰아세우는 이미지를 갖고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남을 움직이기보다 그냥 내 자신이 더 움직여서 내 만족을 채울 뿐이니까 완벽주의자와는 목적은 같아도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 전 성실한 한 마리 개미일 뿐인데요

함께 프로젝트를 하거나, 했던 동료들과 내가 완벽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논하다 보면 결국 내가 성실한 개미의 이미지인 것으로 그 타협점을 찾곤 한다. 타협점이라기엔 내가 끝까지 부정하며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그들이 못이기는 척 받아들여 주는 것이긴 하다.

나에게 ‘성실함’이란, 내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대안이다. 한 때 가드너를 꿈꾸며 관련 일 년 가까이 식물원에서 교육과 실습을 받으며 내 꿈에 대한 의지를 벼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여러 식물을 가꾸고 때로는 관련된 시설도 돌볼 줄 알아야 하는 가드너가 되기엔 나는 작았고, 말랐고, 약했다. 그런 내가 다른 동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몫을 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내가 더 부지런해지고, 더 열심히 하는 것. 동기가 크게 한 삽을 퍼낼 때, 나는 조금 적은 양이라도 같은 시간 동안 여러 번 움직여 그 정도를 맞추려 했다. 힘을 쓰는 것에선 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초화류를 심을 때면 더 집중해서 속도를 높이며 힘쓰는 일에서 내가 못 한 만큼을 채워 그 몫을 대신 채워준 동기가 한 번은 숨을 돌리고 작업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그렇게 내 부족한 점과 한계를 최대한 채우려 노력하는,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베짱이보다는 개미에 가까운 게 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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