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나이를 체감하곤 한다. 가장 흔한 것으로는 20대 때처럼 신나게 술을 퍼마셨다간 장장 2~3일간 숙취의 잔재에 노예가 되어 골골대야 한다. 밤새며 설계 프로젝트 과제를 하던 대학생 때처럼 밤샘 일을 했다간 다음날 정신과 생각은 집에다 두고 온 채 출근한 좀비의 몸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육체적인 노화는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인가 싶기도 하다.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는 육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또는 감정적인 변화로도 나타나곤 한다. 성인이 되며 지워지는 책임감 또는 의무감에 걱정과 불안이 늘고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또는 꿈꾸던 달콤한 미래는 온데간데없이 에스프레소처럼 쓴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미친 듯이 땅굴을 파고드는 어둠의 감정이 지나고 나면 무(無)의 상태가 찾아온다. 너무나 지친 나머지 감정의 촛불은 한 줄기 연기만 애처롭게 남기고 있는 그런 상태. 나는 이러한 상태를 “감정가뭄증”이라고 부르곤 한다.
감정(感情). 느낄 감과 뜻 정. 두 한자가 만나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뜻한다. 하지만 “감정가뭄증”의 상태에서는 그 마음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 감정이 내게 와닿았다 갈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감정이 내게 머물다 갈 시간을 주지 않으니 자연스레 그것에 대한 생각이 없어져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감정이 삭막해져 버리는 병은 대개 사회초년생 딱지를 떼기 시작하는 시점에 발병하는 것 같다.
사회초년생을 보통 몇 년으로 보는지는 조직과 직군의 특성마다 다르긴 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 3년 차는 초년생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원숙하지는 않은 그런 연차. 그런 연차의 나와 친한 동생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씁쓸하게 공감한 이야기가 있었다.
“언니, 예전에는 신입으로 들어오는 후배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뭐든 해주고 싶고 그랬는데, 이젠 모든 게 귀찮아요. 저도 이제 사회인이 다 됐나 봐요.” 이전에는 나도 신입이었고, 그 신입일 때의 어려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떻게든 새로운 신입사원에게 공감하고 배려를 물심양면으로 퍼주고 싶던 그런 시기를 공유한 우리 둘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그날 한 이야기는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젠 신입이 어떤 어려움에 부닥치던, 그것은 그 사람이 해결할 일이지 내가 해결할 것이 아니라는 선을 긋게 된다는 것. 나는 내 할 일과 역할만 잘하고 싶다는 것. 그렇게 동생의 말에 담긴 뜻을 내가 정확하게 알아듣고 공감했다는 점이 참 씁쓸했다. 왜냐하면 나도 당시에 ‘여기저기 챙겨봐야 부질없다.’는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동생의 표현대로라면 나 역시 사회인이 다 됐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업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겪는 모든 제반 사항을 포함하는 것이기에 감정적인 노동도 못지않게 들어간다. 대학도 사회생활이라고 하지만, ‘그때 겪은 것들은 산들바람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직장인의 사회생활은 ‘토네이도’다. 그렇게 초년생들은 크고 작은 토네이도를 수없이 겪으며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체득해나간다. 이 토네이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눈치’, ‘초연함’이다. 우리는 눈치로 이 토네이도의 경로를 예측해서 내가 살아남을 구멍을 향해 적기에 도망쳐야 한다. 때로는 내 직급 이상의 업무량 또는 책임감이 폭우가 되어 내릴 수도 있다. 때로는 사내 정치질이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기에 내 안의 레이더는 항시 가동되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내가 토네이도가 되어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때도 있다. 이때는 반드시 초연함이란 화한 파스를 있는 힘껏 펴 발라서 내 감정을 식혀야 한다. 상사의 말도 안 되게 우기는 소리도, 나를 깎아내리기 위한 남의 험담도, 자기 일을 내게 떠넘기는 다른 부서의 사람도. 분노, 억울함, 서러움 등 감정을 유발하는 어떠한 요인에도 자극받지 않도록 화한 파스 향으로 모든 고통을 눌러내며 참아야만 한다. 그렇게 무던하게, 의연하게 어떤 상황도 물 흐르듯이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직장인의 사회생활이라고 나는 배웠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식히고, 차오르는 생각을 ‘어차피 변하는 것은 없어’라며 꾹꾹 눌러 담다 보면, 초년생에게 남는 것은 회색의 건조한 마음이다. 공감의 관이 막혀 흐르지 못하고, 감정의 펌프는 동력을 잃어 뿜어내질 못하니 초년생의 마음은 그렇게 사막이 되어버린다. ‘감정가뭄증’은 그렇게 초년생의 공감 능력과 감정을 먹고 커져선, 초년생을 ‘자신’밖에 모르는 외로운 사막에 가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