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캡과 흰 운동화로 이 옷까지 살릴 수 있을까? - 2탄
‘민초’ - 민트 초코의 줄임말로, 호불호가 나뉘는 대표적 맛으로 알려져 있다. ‘민초단’ 즉, 민트 초코를 선호하는 집단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민트의 시원하고 달달한 맛과 향, 초콜릿의 깊고 진한 풍미를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입맛’이라는 취향에 자부심이 있다. 민초에 대한 나의 애정과 해석은 매우 자의적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해석으로 느슨하게 연대하는 민초단이 나는 좋다. 뭐든 극단적인 건 좀 별로라고 느끼는 편이라, 민초단이지만 동시에 반민초단 역시 존중한다. 다만, 민초로 장난친 음식 만은 용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민초 치킨 (부들부들…!)
뜬금없이 민초단 커밍아웃으로 시작한 이유는 민트 초코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릴 듯한 아이템이 오늘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포스팅 말미에 살짝 예고했듯이 오늘은 조금 더 도전적인 과제를 들고 왔다. 볼캡과 흰 운동화로 이 옷까지 살릴 수 있을까? 2탄이다. (만약 지금 본인의 옷장에는 무채색과 뉴트럴 컬러로 이루어진 매우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고, 그 평화를 너무나 사랑한다 하는 분은 안구 보호를 위해 이번 포스팅은 건너뛰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 나의 도전 과제는 바로 이 컬러풀한 롱 스커트다. 자유분방한 붓터치를 연상케 하는 패턴과 [1] 팝(pop) 컬러가 꽉꽉 들어차 있다. 아마 안 여사의 옷장에서 이것보다 센(?!) 스커트는 당분간 찾기 힘들 것 같다. 패치워크와 레이스 리본이 뒤섞인 아래의 스커트조차 색깔로만 보면 이보다는 무난한 편이다. (그나저나 이번 시즌 패치워크의 끝판왕은 역시 돌체 앤 가바나!) 이렇게 화려한 패턴의 옷을 사 본적은 없지만, 나 역시 컬러풀한 옷을 좋아하는 편이다. 빨간색 팬츠 위에 네온 옐로우 컬러로 소매에 포인트를 준 라이트 베이지 재킷을 입고 흰색의 로우로우 백팩을 맨 차림은 날이 따뜻해진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출근룩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스커트를 처음 봤을 때 어렵지만 한 번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스스로 부여한 미션을 ‘ 뿌시러’ 내 방 옷장을 열어볼 차례다. 첫 번째로 매치해 본 상의는 흰색 면 티셔츠.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하얗기만 해서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상하의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어우러지는 느낌이 없었기에 패스. 그다음으로는 스커트에 있는 색 중에 핑크색과 노란색을 골라 각각 티셔츠를 입어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하의가 모두 튀는 컬러라서 눈을 둘 곳이 없었다. 마치 옷 자체에 사람이 눌려 보이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내 방 옷장에서 엄마 옷이 걸려있는 섹션 - 그렇다, 안 여사의 옷장은 이미 내 구역에 지사(branch)를 낸 상태다 - 에서 이 티셔츠를 발견했다. 진회색 바탕에 [2] 레트로 퓨처리즘 느낌의 우주선이 프린팅 된 면 티셔츠였다. 적당히 복잡한 패턴이 매우 복잡한 패턴과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생각보다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진회색은 남동생의 물 빠진 검은색 볼캡과도 잘 붙었으니 고민 끝에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 넣은 듯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었다.
아우터는 운동화와 같은 계열로 맞춰보았다. 흰색 면 재킷과 아이보리색 페이크 레더 재킷 둘 다 넉넉한 핏인데 둘 중에 더 마음에 들었던 건 면 재킷이다. 라이더 재킷에는 벨트나 지퍼 같은 디테일적인 요소가 많이 있어서 아무래도 이 스커트랑 같이 입으면 상하의가 전체적으로 과한 느낌. 면 재킷으로 여백을 주는 편이 내 취향이다.
이쯤 되니 안 여사는 이 스커트를 어떻게 입었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물어보니 상의는 검은색 계열로 심플하게 입고 여름옷이라 샌들을 신었다고 한다. 말로만 들어서는 썩 어울릴지 어떨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아서 나중에 실제로 입은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때 꼭 비교컷을 찍어서 업데이트하기로…! 이 포스팅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민트 초코 대신 이 스커트를 매개로 세대를 뛰어넘어 연대하는 그런…. 뭐, 그런 거창한 이유야 뭐가 있겠냐 마는, 그냥 재미는 있을 테니까. 우리 엄마여서가 아니라 안 여사는 내가 쓴 글을 대체로 재밌어하는 편이다. 재미야말로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자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므로. 그리고 보니 안 여사와 대화하면서 수집해 둔 옷 관련 에피소드도 몇 가지 있는데 나중에 따로 풀어볼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의 도전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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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팝 컬러(pop color): 채도가 높고 화려한 색.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2] 레트로 퓨처리즘(Retro-futurism): 1960년대에 우주개발 시대와 함께 성행하였던 퓨처리즘(미래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창작예술의 한 경향. 라틴어로 '거슬로 올라간다'는 뜻의 '레트로(retro)'와 '미래주의'를 뜻하는 영어 '퓨처리즘(futurism)'의 합성어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우주개발 시대와 함께 성행하였던 미래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창작예술의 경향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1983년 미국의 로이드 던(Lloyd Dunn)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트로 퓨처리즘에는 '과거에서 본 미래'와 '미래에서 본 과거'라는 두 가지 경향이 포함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레트로 퓨처리즘 [Retro-futur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