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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유월 Jul 28. 2021

<작은아씨들>우리의 유년기가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

영화 ‘작은 아씨들(2020)’을 보고

*스포일러 주의!



‘우리의 유년기가 끝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

작은 아씨들(2020)


가족과 성장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너무도 따뜻하다. 네 자매가 집에서 연극놀이를 하고, 놀면서 깔깔대는 모습은 너무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정말 저런 자매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가도, 영화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마저도 잊게 된다. 이런 따뜻한 유년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 있다.


‘우리의 유년기가 끝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

나는 이 대사가 이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볼 때는 이 대사에 담겨있는 조의 슬픔이 공감되었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성장, 가족, 여성’이라는 단어들로 글을 적어보려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계속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교차된다. 그들의 유년기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따뜻했지만, 현재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절이 지나가고, 네 자매는 각자의 길을 찾아 아주 조금씩 흩어졌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우정을 공유했던 자매들도 결국 커가며, 현실적인, 자신의 길을 찾아 흩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조’는 그중 그 누구보다 두 삶의 괴리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그 사이에서 오는 공허함에 고민하는 인물이다.





1.’썰물처럼 사라지는 거야,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가족


베스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던 대사이다. 어쩌면 이리도 담담하게 죽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대사는 자매들이 흩어지는 모습에 대한 말 같기도 했다. 베스 또한 죽음을 향해 떠나가는 거니까. 천천히, 마치 썰물처럼 가족들은 흩어졌다. 어쩌면 그들의 인생은 더 흩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들은 다시 모여들 것이다. 가족이라는 힘이 그들을 끌어당기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쓰려졌지만, 그곳에 그들의 흔적은 남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곳에 그녀들의, 그리고 가족의 인생이 담겨있다.






2.‘우리의 유년기가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성장


조는, 삶의 목적 그 자체가 훌륭한 소설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유롭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은 조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을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롭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에 조는 그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 바깥의 세상에서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했다기보다는 그녀 스스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이 그녀를 자유롭고, 당당하고, 또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자매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날때, 너무나도 불안해한다.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로리에 대한 조의 감정이 명확해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하지 않은 감정보다는 다른 이유가 거절이란 답을 이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의 청혼을 받고, 그의 아내가 된다면?’ 자유롭고 온전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한발짝 벗어나게 되니까.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여자는 사랑이 전부야’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려 노력하면서도 조는 한가지를 간과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 또한 온전한 자신이 되는 길의 방해물 중 하나라는 것을.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것도 그녀의 감정을 속이는 것 중 하나였다. 뉴욕에서의 작가생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는 조는 이제 없다. 출판사가 요구하는 소설을 쓰는 그녀는 스스로 그 사실에 당당하지 못했다. 그 이야기에 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이 그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방황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할 뿐이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영화의 중반부에 베스가 심하게 아프자 그녀는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베스는 결국 숨을 거두고, 그녀의 장례식 후에 조는 고향집에 머물며 어린시절을 다시 떠올린다. 어린시절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녀는 다시 솔직해질 방법을 발견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 과거를 내 삶의 반짝이던 순간들로 기록하고 남겨두는 것이다. 그 순간을 삶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고 새로운 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그녀가 발견한 방법이다. 영원한 순간이란 없다. 영원한 규칙도, 가치관도, 생각도, 언젠가는 다 변할 수 있다. 그녀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소설로 쓰며, 그 행복함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영원히 가족의 울타리에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걸 벗어나더라도 그녀를 당당하게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여자는 결혼이 전부라는 말은 이제 지긋지긋해요’-여성


조는 어려서부터 ‘여자는 결혼(혹은 사랑)이 전부’라는 말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로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엄마에게 털어놓는 장면, 프리드리히에게 달려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변화된 그녀를 보여준다. 결혼이 자신을 구속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녀를 솔직하고 자유롭게 하는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영화의 막판에 출판업자의 요구로 그녀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결혼시키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것을 별로 만족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소설 속에서는 결국 사랑이 전부인 모습으로 이야기를 마쳤으니까. 이 영화도 조가 결혼을 하고 끝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이 전부’인 여성이 아니라, ‘사랑도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둘의 엔딩은 같지만, 시사하는 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그렇게 선택된 거지만, 조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결혼을 구속이 아닌 자유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솔직한 그녀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직한 사랑, 솔직한 이야기, 솔직한 인생. 이 영화는 조가 자신의 책 ‘작은 아씨들’을 들고 미소를 짓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곳에 그녀의 솔직한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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