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외 3
1. <정념론>(르네 데카르트/김선영/문예출판사/2019)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최초로 읽은 철학책(교양서나 해설서가 아닌 '철학자'가 직접 쓴 책)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었고, 두 번째로 읽은 책이 역시 데카르트의 <성찰>이었다. 아마도 김상환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서양근대철학사'라는 수업 때문에 읽은 것이었겠지만, 데카르트의 저작을 통해 처음 철학을 경험했던 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데카르트의 글은 (비록 번역본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명료해서 읽기에 편안하다. 물론 이해하기가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정신은 긴장하게 되지만, 그 긴장은 상당히 기분 좋은 긴장이다. 쉽고 명료한 문장에 엄청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철학이란 역시 대단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방법서설>과 <성찰>이 가장 유명하지만, <정념론> 또한 데카르트의 저작으로 빼놓을 수 없다. 20년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최근에야 새로운 번역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역자에게 감사하다.
삶의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오직 정념에 의존한다(제212항).
2. 전태일 평전(조영래)
인간이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가 무엇인지도, 반드시 들어야 할 음악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반드시 사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노동자의 개념이 희박해져서, 그래서 자신이 노동자라는 자각도 하지 못하게 돼서,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어서, 노동의 여건이 더욱 열악해져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더욱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선언'이라고 부른다.(17쪽)
3. <능력주의>(마이클 영/유강은/이매진/2020)
공정은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논쟁의 와중에 능력주의가 공정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과연 능력주의는 공정할까. 혹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 아닐까. 능력주의의 수혜자가 될 수도 없는 능력 없는 자들(결국 능력주의에 의해 희생될 자들)이 속아서 능력주의에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한편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덕분에 남들보다 손쉽게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는 자들을 보면, 정말이지 계급장 떼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오로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실력'이라는 것이 진정 '자신의 능력'일까 하는 점을 고려해 보면, 역시 능력주의의 타당성에 다시 의문이 생긴다. 아무튼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는 '능력주의'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저작(소설)인데, 사회학적 개념이 된 것이다. 능력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이다.
4. 월간에세이 2024년 2월호
내가 쓴 에세이가 실려서 구매한 책이다. 월간에세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브런치 덕분이다. 브런치를 통해 월간에세이의 편집장님께서 원고 청탁을 해 주셨다. 2021년 11월호에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7월호에 <제가 누군가의 이웃입니까>라는 제목으로, 2024년 2월호에 <세상의 모든 책>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실었다. 내가 쓴 글이 지면에 활자화가 되는 것에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에세이는 어떤 새로운 시도이다.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야 한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아 쓰는 것이다. 누구나 해 본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자극을 받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글이 나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글을 쓴 사람의 진심에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척 단순한 생각이지만, 분명 그랬을 것이다. 브런치에 쓰는 글만 하더라도 누군가는 읽는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가 닿으려면, 쓰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진심을 담으려면, 겁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글에 마음을 담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