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외 3
2024년 2월 6일 네 권의 책을 구입했다. 4권 모두 철학자 칸트 관련 서적이다. 흔히 철학사는 칸트 이전과 칸트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칸트는 철학사를 양분하는 거대한 산맥이다. 칸트는 거대한 저수지라고도 한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오고, 그 이후의 철학은 칸트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조금의 과장도 아니다. 칸트의 문제의식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어 흄에 이르러 극단으로 치달은 회의주의를 극복하려는 데서 시작되었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칸트와 대결하면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헤겔은 칸트가 만들어 놓은 현상 세계와 물자체를 종합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저작에서 <존재와 시간>에서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인기가 치솟은(왜 그런 것일까?)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문에서 자신의 철학은 칸트 철학에서 출발했으며, 따라서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를 먼저 읽을 것을 신신당부한다. 라깡과 푸코의 문제틀과 그들이 설정한 철학 형식은 철저하게 칸트적이다. 철학사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철학을 전개한 들뢰즈 또한 <칸트의 비판철학>이라는 저작을 남겼다. 그러니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너무도 당연히 칸트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칸트의 철학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책 치고 어렵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칸트도 무척 어렵다. 그러나 칸트의 책은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칸트의 문장은 비교적 단정하기 때문이다. 번역본도 좋은 책이 많이 있다. 게다가 칸트 연구는 오랜 시간 대단히 활발히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2차 서적도 많다.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쇼펜하우어의 얘기를 들으면, 칸트 철학 공부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하고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불끈 솟는다. "칸트의 주저를 읽은 사람이 그로 인해 정신에 받는 영향은 장님이 내장안 수술을 받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를 읽으면 정신의 개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이렇게도 얘기하고 있다. "칸트 철학은 그것을 파악한 모든 사람의 머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그 변화가 너무 커서 가히 정신적 거듭남이라 일컬을 만하다." 대학생 때 2명의 동학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최재희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 주에 공부한 부분에 대해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 공부모임이 진행되었는데, 중간중간 삐걱댄 일도 있었지만, 아무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내 머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니 당시 나는 칸트를 읽었을 뿐, 칸트를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순수이성비판>을 다 읽고 나서는 상당한(!) 자신감이 마음 가득히 차 올랐던 기분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이제 칸트를 '파악'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 시점이다.
1. <임마누엘 칸트>(오트프리트 회페/이상헌/문예출판사/2023)
책 표지에 적혀 있듯 칸트 사상 입문서로 유명한 책이다. 칸트의 3대 비판서에 대한 종합적이고 충실한 해설을 담고 있다. 유사한 책으로 F.카울바하의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 백종현 선생님의 <존재와 진리>라는 책도 좋은 책이다. 한자경 선생님의 <칸트와 초월철학>, <칸트 철학에의 초대>도 칸트 입문서로 좋은 책이다.
2. <칸트의 윤리학>(맹주만)/<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주해>(루이스 화이트 벡)
<칸트의 윤리학>은 국내학자가 쓴 책이라서 더욱 기대가 된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주해>는 제목 그대로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순서에 따라 해설하고 있는 책이다. <실천이성비판> 공부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3. <칸트 미학-판단력 비판의 주요 개념들과 문제들>(크리스티안 헬무트 벤첼/박배형/그린비/2020)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이은 저작으로, 흔히 '제3 비판'으로 불린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앞선 두 비판서에 대한 이해와 칸트의 철학의 전체적인 기획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선이해 앞서는 난공불락이다. <판단력 비판>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