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매혹된 자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마음은 믿기 어렵다. 마음은 그나마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입 밖으로 표현된 말을 통해서 우리는 간신히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말로는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더듬더듬 윤곽이나마 헤아린다. 마음을 믿고 싶기에, 상대의 마음을 안다고 믿고 싶기에 우리는 그 상대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말은 변한다.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인데, 처음의 그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이 처음부터 말로 표현된 그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는 말,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럴 때 우리는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사랑한다는 상대의 말을 계속 확인하려 드는 것은, 그 마음이 보이지 않기에, 불안해서 그러한 것일 게다.
믿기 어려운 것이 어디 마음뿐이겠는가. 눈에 보이고, 감각되는 모든 것을 사실은 믿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다. 내 손 아래 키보드가, 내 눈앞에 책이 과연 정말 존재하고 있을까. 어떻게 확신하는가. 데카르트는 이런 의심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어떤 악마가 우리를 속여서 실재하지도 않는 것들을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우리의 세계 자체를 붕괴시킨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 붕괴된 세계를 복원하고 구제하는 것은 전지전능하고 지복지선하신 '신'이다.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라는 존재의 보증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종영한 조정석, 신세경 주연의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이하 '세작')은 시종일관 '마음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세작>에서 반복하여 나온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고/미워할 때는 죽기를 바라거늘/살기를 바라놓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그것이 미혹이다."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가 결국 '미혹'에 관한 얘기임을 보여준다. '미혹迷惑'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미혹된 자들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자들이다('迷'는 '길을 잃다'라는 뜻이다).
길은 곧 도(道)이다. 도덕경은 이렇게 말한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행하는 데 힘을 쓰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어도 (그것이 도인지 무엇인지) 긴가민가하고, 바보는 크게 (비)웃는다. 우리들 보통 평균인들은 도를 들어도 긴가민가하면서 어리둥절해한다. 누군가 마음을 보여주어도 그것이 상대의 진짜 마음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하는 것이다. 미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냥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그냥 믿는다는 것', 이것이 힘써 행한다는 상사(上士)의 자세일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그냥 믿을 때, <세작>에서 이인(조정석)과 강희수(신세경)가 그러했듯, 미혹된 자들은 매혹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