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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왜 여성 작가의 책만 사는가

2025년 1월 26일

by 글쓰는 변호사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모성, 글쓰기, 그리고 다른 방식의 사랑 이야기>(레슬리 제이미슨),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침묵을 깬 15인의 작가들>, <마더후드>(실라 헤티>, <사나운 애착>(비비언 고닉), <살림 비용>(데버라 리비) 등. 최근 아내가 산 책들이다. 공통점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 아내 덕분에 내가 평소 관심 갖지 않을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좋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왜 '이런 류'의 책들만을 사는 것인지.


아내의 대답은 간명했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것. 책을 고를 때 남자인 나는 작가의 성별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배수아 등을 읽을 때도 이 작가들이 여성이라는 점이 큰 의미는 없었다. 반면 여성인 아내에게 작가의 성별은 중요한 문제였다. 나로서는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문제라서 조금 놀랍기도 했다. 책을 고르는 문제에서(아니 어쩌면 그 중요한 문제에서!) 조차도 여성은 고민을 해야 한다. <삼국지>나 <초한지>가 여성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80-90년대 한국 남성 작가들의 소설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등장하는 성차별적인 표현들이 장면들은 여성들에게 어떤 기분을 안겨줬던 것일까. 여자로 사는 것은 힘들다.


영화평론가인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을유문화사, 2024)에서 이런 고백을 보았다. "남자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대체로 남자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리에 작가 이론을 욱여넣고 있었다(사실 이론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직업이 위대한 남성들을 위한 서비스 직종이라고 느끼기도 했다."(92쪽) 법철학 및 정치철학 분야의 대가인 마사 누스바움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충격적이다.


음, 곤란한 질문이네요. 저는 존 스튜어트 밀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가지 이유는 위대한 옛 철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상상해 보면 여성에 대해 경멸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뻔한데 밀은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여긴 소수의-어쩌면 유일한-철학자이기 때문이에요. 밀이라면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철학 한 입 더>, 열린책들, 13쪽)


아내가 왜 주로 여성 작가들의 책을 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그동안 가장 가까운 이웃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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