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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알바생

2025년 1월 27일

by 글쓰는 변호사

집 근처 커피숍에서 종종 흑당 콜드브루를 주문해서 먹는다. 알바생의 센스와 친절한 마음이 웃음을 짓게 한다. 식당이나 편의점을 갔을 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앞에 먼저 간 사람이 문을 잡아 주면,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똑같은 친절을 베풀게 된다. 만약 먼 훗날까지 인류가 망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기술 발전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친절과 다정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한다.


다소 속물적인 생각이지만, 친절은 실리적인 차원에서도 유용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베풀 경우 반드시 어떤 보답이 있다고 믿는다. 베푼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되돌아온다. 그래서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불쾌하거나 화가 나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친절을 베풀면 더 많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그걸 모르다니, 성격도 안 좋고 머리까지 안 좋은 사람이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친절을 베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하게 계산 없이 친절을 베풀 것이다. 하지만 친절을 베풀기 어려운 마음의 소유자라면, 계산이라도 하자. 친절을 베푸는 것이 생존에 보다 유리하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라고 '환대'를 정의한다. 그리고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절대적 환대'란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복수하지 않는 환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환대'라는 일상어가 학술 용어로 쓰이면서 복합적 의미를 거느리는 두터운 개념이 되어 버렸지만, 나는 이 '환대'가 '친절'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절이 없다면, 사회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온갖 진상들에게 시달리는데,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느냐고. 한 시간, 두 시간을 지옥철에 시달려 녹초가 된 사람이 어떻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느냐고.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이 당장 직면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지친 나 자신을 잠깐 속이면서,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어 보자. 분명 삶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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