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7일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에서 김무비(박보영)의 아역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는 야무지고 똘똘한 인상이다. 연기도 잘한다. 이야기의 흐름상, 성인인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필요할 수 있고, 그 경우 아역 배우가 연기를 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어른들이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 본인이 연기와 인기와 관심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은 결국 받은 것을 훨씬 초과하게 된다. 특히 우리는 (재벌이나 정치인의 더 큰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연예인의 보다 작은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비난은 대체로 옳지 않다. 윤리적 비난은 보통 잘못한 것 이상의 처벌을 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만큼 윤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 알프레드 히치콕, 왕가위. 잘은 모르겠지만, 모두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업적을 남긴 좋은 감독들이(라고들 한)다. 그들이 만든 영화도 전부 다는 아니지만, 꽤 재미있는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저 뛰어난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이 <8월의 크리스마스>, <번지 점프를 하다>, <봄날은 간다>보다 더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잘 읽히지도 않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라깡, 들뢰즈, 데리다의 책 보다 홍세화, 박노자, 강준만의 책이 나에게 더 의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나 책이 있어야 하겠지만, 결국 기분을 따뜻하게 해주는 작품이 좋은 예술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성은 체력에서 나온다." 드라마 속 김무비의 대사이다. 가끔 짜증이 심하게 나는 날이면, 몇 시간 뒤 여지없이 감기였다는 것을 확인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백번 공감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것처럼 체력에서 인성이 나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유쾌함, 적절한 다정함, 상황에 맞는 친절 등이 좋은 인성의 징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덕성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는 결코 발현되지 않는다. 내 몸이 힘든데 누구를 배려할 것이며,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유쾌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성격이 나쁜 사람들은 어쩌면 체력이 약한 사람들일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지금 내가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