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그레이프

2025. 9. 30.

by 글쓰는 변호사

길버트에게 가족은 짐이자 구속이고 속박이었을 것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 어니.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삶에의 의지를 잃고 폭식증에 걸려 몸집이 비대해진 나머지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누나와 여동생. 이런 상황이라면, <길버트 그레이프>는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을 강요하는 끔찍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길버트는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길버트는 기본적으로 착하고, 이해심 많고, 밝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탓하면서 우울해하거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좌절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길버트는 결국 어니와 함께 베키의 캠핑카를 타고 엔도라를 떠난다.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인구 1,091명의 작은 시골 마을 엔도라를. 길버트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 한들 길버트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적장애인인 동생 어니는 누가 돌봐 줄 것인가. 여러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 볼 때 베키와의 사랑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길버트는 분명 어디에 가서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집을 불태우는 장면이다. 이층에 있는 침대에서 죽은 어머니는, 몸집이 너무나 비대해서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으면, 집 밖으로 옮길 수가 없다. 크레인을 사용하면 동네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생전에도 몸집이 비대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괴물 취급을 받았던 어머니를 돌아가신 후에도 놀림감이 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길버트는 어머니의 시신을 집에 둔 채로, 집을 불태운다. 그렇게 길버트는 어머니가 자존감을 지키면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한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사진 출처-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