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해피라면과 긴디야
2019년 4월 9일의 기록.
가끔 일하다 보면 점심을 놓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사무실 빌딩 지하 1층에 있는 명동할머니국수 집에 가서 잔치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곤 했다. 다른 메뉴들은 여느 분식집과 대동소이했지만, 이 집의 특징적인 메뉴는 두부국수였다. 어느 날은 잔치국수가 지겨워 다른 메뉴를 보다가 두부라면이 눈에 띄었다. 두부라면이라니. 어떻게 라면에 두부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먹어 본 적이 있었다. 그 후, 난 명동할머니국수에 가게 되면 두부라면만 먹었다. 건물주와의 어떤 분쟁으로 떠나갔다는 소문만을 남긴고, 이제 명동할머니국수는 간판만 걸린 채 그 자리에 없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 즐겨 먹던 해피라면을 오랜만에 마트에서 다시 만났다. 내 기억속에서 해피라면은 '해피소고기라면'이었는데, '해피라면'으로 돌아 온 것 같았다. 옛 추억을 잊지 못한 팬들의 성원 덕이었을까, 단종의 굴레를 벗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잊고 지냈던 나같은 가짜 팬도 반가운 마음에 5개들이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해피소고기라면이면 어떻고, 해피라면이면 어떤가. 봉지에 그려진 나팔 부는 아기 천사가 여전히 통통하듯이 라면 맛도 여전히 맛있었다. 해피하게도.
해피라면에 두부를 넣고 끓여 보았다. 대파가 있다면, 대파를 송송 썰어서 넣는 것도 좋다. 없다면, 물론 안 넣어도 좋다. 라면은 언제나 그 자체로 맛있으니까. 라면에 두부를 넣으면, 두부가 뭔가 라면의 짠맛을 중화시켜주는 느낌이라서 약간 건강식을 먹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라면에 들어 있는 두부를 처음 입에 넣을 때는 라면 스프 맛에 가려져 두부맛이 잘 나지 않지만, 혀로 살짝 뭉개면 두부 특유의 질감이 느껴지면서 역시 두부 특유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늘은 어둡고, 종일 비가 흩뿌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꽤 쌀쌀했던 어느 봄날 저녁, '두부해피라면'이 먹고 싶다는 인선에게 끓여 주었다. 맛있게도.
두부해피라면을 긴디야(guindilla : 스페인 고추의 일종이라는데, 식초에 절인 것이다. 할라피뇨와 약간 비슷하지만, 맛의 결이 많이 다르다. 나에게는 긴디야가 훨씬 맛있다.)와 같이 먹었다. 어떤 라면들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완전해서 다른 음식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해피라면은 여백미가 있는 라면이었다. 긴디야와 대단히 잘 어울렸다. 한 달간 유럽여행을 갔을 때,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심신이 지쳐있던 인선과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컵라면과 긴디야를 먹으면서 밤마다 위로를 받았는데, 그 때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추억돋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