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2019. 3. 12. 화요일의 기록
집행정지 신청 사건 때문에 행정법원에 다녀왔다. 나는 신청인의 대리인이었고, 상대방은 xx공단이었다. 집행정지란, 행정청이 행하는 공권력의 행사인 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을 정지시키는 제도로서, 임시적 구제제도이다. 쉽게 말해서 정부가 행사하는 공권력의 효력을 잠깐 멈추는 제도이다. 공권력의 행사는, 일단 유효한 것으로 추정되고(공정력), 그래서 설사 그 공권력을 취소시켜 달라는 취소소송을 제기해도 그 공권력의 효력은 정지가 되지 아니한다(집행부정지의 원칙).
그런데 정부의 어떤 행위가 항상 옳기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부분에는 하자가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인데, 그 행위의 상대방인 국민은 취소소송이 끝날 때까지 군소리없이 그 위법한 처분을 수용해야 하는가? 가령 갑작스레 정부가 국민에게 지금까지 지원해 줬던 보조금 40억 원이 잘못 지원되었으니 일시에 반납하라는 처분을 했다고 해보자. 그리고 자세히 살펴 보니 이와 같은 반납처분이 위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하자. 그런데도 국민은 꼼짝없이 40억 원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40억 원 반납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하더라도 취소소송에서 그 처분이 위법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는 그 처분은 적법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불합리하고, 이러한 불합리를 막기 위한 제도가 바로 집행정지이다. 그런데 집행정지 신청에서 인용 결정을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 말했듯이, 공정력 때문이다. 즉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일단 유효하다고 추정을 받는데, 그 유효하다고 추정을 받은 행정부의 행위를 사법부가 섣불리 정지시키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상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이 사건의 결론이 나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인용 결정을 받았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하다. 그런데 xx공단의 처분은 너무나 허술해서 빈틈이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xx공단의 소송수행자로 법정에 출석한 변호사님의 변론도 (열심히 하셨지만) 허술한 점이 많았다. 변론 과정에서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xx공단이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 없이 단지 의심(좋게 말하면 심증)만으로 문제의 처분을 하였고, 소송 과정에서 처분의 적법성을 확인할 증거를 찾아 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놈들은 뭔가 냄새가 난다->처분을 때려서 겁을 주자(그러면 소송을 제기하겠지?)->예상대로 처분을 당한 국민은 소송을 제기한다->그러면 소송 과정에서 구체적인 물증을 찾아내자, 뭐 대충 이런 사고의 흐름을 보여 준 것이다. 처분을 하는 공권력은 어떤 정의감에 불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분을 당하는 국민은 피해가 막심하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의실현을 하고 싶다면, 적법한 처분을 해야 한다. 처분 단계부터 꼼꼼하게 구체적으로 증거를 모아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어느 경우에나 공권력의 행사는 신중해야 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치밀해야 할 것이다. 처분의 상대방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처분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나 국가나 소송하느라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