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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13. 2019

001_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효력(1)

헌법불합치와 위헌은 다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사건'(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에서 형법 제269조 제1항(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규정)과 형법 제270조 제1항(낙태를 도운 의사 등을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싸고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던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오랜 시간 깊은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통죄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박근혜 탄핵사건 그리고 이번 낙태죄 사건 등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은 유독 뜨겁습니다.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그만큼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만큼,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와 효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길잡이 법률지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 종종 '판결'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의미인지 누구나 다 이해하기는 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틀린 표현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서는 '결정'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따라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아니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대한민국헌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113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서는 '판결'이 아니라 '결정'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헌법재판이 아닌 일반법원의 재판은 크게 판결, 결정, 명령으로 구분됩니다. 판결이란 소송절차의 중요사항(소의 적법 여부, 청구의 인용 여부 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고, 결정이란 판결로 재판할 사항 이외의 사항에 관한 재판(소송절차 중 비교적 경미하고 신속을 요하는 사항에 관한 재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치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뭔가 법원(특히 대법원)의 판단보다 중요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명백한 오해입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동등한 헌법기관으로서 상호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지 낙태죄 '위헌' 결정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법이 명시적으로 예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유형은 위헌결정과 합헌결정(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며,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입니다. 헌법불합치 결정과 같은 이른바 변형결정은 법에서 정하고 있는 결정 유형이 아닙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초대재판관을 지낸 변정수 재판관 같은 분은 "위헌이면 위헌, 합헌이면 합헌"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물론 소신있는 판단을 할 것을 강조한 의미도 있습니다).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이라면 곧바로 '위헌'이라고 결정해서 그 효력을 즉시 제거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지 애매하게 '헌법불합치' 결정 등으로 그 효력을 살려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거칠게 말하면, 비겁한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겁하다'는 다소 거친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우리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과 같은 변형결정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번 낙태죄 사건에서와 같이 자주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곧바로 위헌 결정을 해서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법적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번 낙태죄 사건과 같이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는 경우, 특히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된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명시한 입법 개정 시한까지는 비록 헌법에 위반되는 벌률이라고 할지라도 입법자가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다만 헌법불합치 결정의 원칙적인 모습은 '적용중지 헌법불합치'이고, 이 경우 그 법률의 적용이 즉시 중지됩니다). '위헌 결정'이 법률의 효력을 즉시 상실시키는 것이라면, '잠정적용 헌법불합치'는 위헌적인 법률의 효력이 즉시 상실되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 둘은 분명히 다른 결정입니다.  


3.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또 다시 판단하는 것이 일사부재리 원칙 위배는 아닐까요?


대한민국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에 대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경우 법원은 면소판결(공소권의 소멸을 이유로 하여 소송을 종결시키는 형식적 재판,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39조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이미 심판을 거친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는 심판할 수 없다"라고 하여 일사부재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에 낙태죄에 대해 위헌 여부 판단을 하고 합헌 결정(2010헌바402 결정)을 한 바 있는데, 이번에 또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심판하는 것이 헌법재판소법 제39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요? 헌법재판소가 다시 판단을 한 것을 보면 분명 일사부재리 원칙은 아닌데, 그 이유는 헌법재판소법 제39조의 '동일한 사건'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동일한 사건'이란, 동일 청구인이 동일한 심판유형에서 동일한 심판대상에 대하여 다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2012년 결정과 이번 결정은 우선 청구인도 다르고, 심판대상도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형법 제270조 제1항에서 위헌 여부가 문제된 부분이 2012년에는 '조산사가 낙태를 도운 경우'였고, 이번에는 '의사가 낙태를 도운 경우'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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