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사람들이 구제될 수 있을까?
낙태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규정인 형법 제269조 제1항과 낙태를 하고자 하는 여성을 도운 의사 등을 처벌하는 규정인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부담이 실질적으로 온전히 여성에게만 지워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여성의 건강권, 자기결정권(reproduction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으로 가는 중요한 첫걸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법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과거에 낙태죄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구제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구체적으로 이번 헌재 결정 이전에 형법 제269조 제1항이나 형법 제270조 제1항 위반으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 공소가 제기되어(기소되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나아가 이번 헌재 결정 이전에 이미 유죄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과연 구제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보면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효력>에 대해서 글을 맺겠습니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는 위헌결정의 효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2항-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제3항-제2항에도 불구하고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다. 다만, 해당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대하여 종전에 합헌으로 결정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그 결정이 있는 날의 다음 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제4항-제3항의 경우에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근거한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하여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소급이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이고, 법률에서 소급효란 어떠한 법률이 성립하기 이전 시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법률이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후에 생긴 법률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사실관계에 개입하여 규율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형벌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의 소급효도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가령 간통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던 형법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기 전에 간통은 범죄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간통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던 형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은 그 위헌 결정이 있기 전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 간통 행위를 범죄가 아닌 행위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의 소급효입니다.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의 소급효가 수사와 재판에 미치는 구체적인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형벌 조항에 위반하였는데, 그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선고되었다면, ⓐ 현재 수사기관에서 수사의 대상이 되어 있다면,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고, ⓑ 기소되어 현재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고, ⓒ 유죄판결이 확정된 상황이라면, 그 확정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낙태죄에 대한 이번 헌재 결정으로 낙태죄를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와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 결정이 아니라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나머지 다소 복잡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서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헌법불합치도 분명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형법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이를 단순위헌으로 선고하여 그 즉시 효력을 폐지시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헌법에 위반됨이 분명함에도 입법자가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헌재 결정에는 위에서 살펴 본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의 소급효'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과거 야간옥외집회와 관련된 사건에서 분명하고 뚜렷하게 그 입장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① 비록 헌법재판소가 야간옥외집회를 처벌하는 형벌 규정에 대해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지만, ② 헌법불합치도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임이 분명하고, ③ 그렇다면 야간옥외집회를 처벌하는 '형벌'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이므로 그 조항이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판단의 근거에 대해 "헌법 제111조 제1항과 헌법재판소법 제45조 본문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만을 심판·결정할 수 있으므로,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된 이상 그 조항은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 단서에 정해진 대로 효력이 상실된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헌법불합치결정의 주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되고, 이유 중 결론에서 개정시한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다음날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하였더라도, 이 사건 헌법불합치결정을 위헌결정으로 보는 이상 이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헌법재판소는 어떤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이면 위헌, 합헌이면 합헌이라고만 판단할 것이지, 위헌이라고 하면서 언제까지 잠정적으로 적용한다와 같은 명령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법률 조항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형벌 조항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태도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이번 낙태 처벌 규정에 대해서도, 잠정적용 헌법불합치라는 이유로 개선입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계속 적용을 해야 한다면, 현재 낙태죄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결코 타당하지 않습니다.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이 이미 확인된 형벌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면, 누가 처벌을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일선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어떠한 판단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잠정적용 헌법불합치라고 하더라도, 단순 위헌 결정과 마찬가지로 소급효를 인정하여 처음부터 낙태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형벌 조항에 대한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소급효가 인정된다면, 과거에 이미 낙태죄로 처벌받은 사람들도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즉,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4항에 근거하여 확정된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판결의 부당함을 시정하는 비상구제절차)을 통해 그 유죄판결을 취소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답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3항 단서는 "해당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대하여 종전에 합헌으로 결정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그 결정이 있는 날의 다음 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라고 규정하여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의 소급효가 미치는 시간적 범위를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습니다. 소급효를 인정하되, 과거 동일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판단한 적이 있다면, 합헌 결정을 선고한 날의 다음날까지만 소급효가 미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번 낙태죄 사건의 경우 소급효가 어디까지 미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2. 8. 23. 낙태죄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2012. 8. 24.까지만 그 위헌 결정의 소급효가 미치는 것입니다. 즉 2012. 8. 24. 이후에 낙태죄 위반 행위를 한 사람들만 이번 헌재 결정의 소급효에 의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2012. 8. 24. 이전에 낙태행위를 했지만, 유죄의 확정 판결은 2012. 8. 24. 이후에 받은 사람들은 구제될 수 있을까요? 가령 2012. 7. 15.에 낙태행위를 하였지만, 그 행위에 대한 유죄의 확정 판결은 2013. 12. 13.에 이루어진 사람들이 구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행히 우리 대법원이 다음과 같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합헌결정이 있는 날(A)의 다음 날 이후에 유죄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면, 비록 범죄행위가 그 이전에 행하여졌다 하더라도 그 판결은 위헌결정(B)으로 인하여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을 적용한 것으로서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근거한 유죄의 확정판결'에 해당하므로 이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범죄행위 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유죄의 확정 판결 시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범죄행위가 합헌결정 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유죄의 확정 판결이 A날의 다음 날부터 B날까지의 사이에 이루어졌다면, 재심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낙태죄 사건에 대입해 보면, 비록 낙태행위가 2012. 8. 24.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확정판결이 2012. 8. 24.부터 2019. 4. 11.까지의 사이에 내려졌다면, 그 판결에 대해서는 재심청구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제 낙태죄 문제와 관련한 후속 조치에 대한 책임은 입법기관인 국회와 일선 수사기관 및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입법과 사법판단의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권 및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