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유물일까
런던 곳곳에서 우체통과 전화부스를 만날 수 있다. 우체통과 전화부스는 이층 버스와 튜브의 로고와 더불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런던임을 알려 준다. 넷의 공통점은 모두 강렬한 빨강색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자칫 촌스러울수도 있는 색인데, 이상하게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홀로 튈수도 있는 색인데 주위와 꽤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런던의 우체통과 전화부스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런던 곳곳에서 우체통과 전화부스를 만날 수 있다"라고 썼는데,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곳곳에서'라는 단어가 '자주'라는 의미를 환기시킨다면)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유럽여행 사진이 담긴 폴더를 여러 차례 뒤져 봐도 그렇고, 기억 속을 더듬어도 그렇고, 런던의 거리에서 우체통과 전화부스를 보기는 했지만, 그리 자주 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누가 얼마나 자주 우체통과 공중전화를 이용하겠는가. 몇 백년된 건물과 상점이 현존하는 유럽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우체통과 전화부스는 간신히 철거를 면한 채 도시의 유물로 살아남아 제 자리를 간신히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런던에서 의외로 우체통과 전화부스를 이용한 기념품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위 사진 속 우체통과 전화부스 양철캔은 (기억이 맞다면) 켄싱턴 팰리스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 산 것 같다. 우체통, 전화부스, 이층버스가 한 세트였고, 통 안에는 차가 담겨 있었다. 다른 차들도 많아서 이 양철통 안에 들어 있던 차는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이층버스는 친한 형에게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로 주었다.
저는 디자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걸 말하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색채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색채와 형태를 조합해서 삶의 편의성을 높이고, 특정한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디자인의 목적일 것입니다. 문외한이라서 정확한 이유는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런던의 거리 곳곳, 지하철 역 내에서 만난 '디자인'은 기능성을 뛰어 넘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디자인이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체통과 전화부스마저도 말입니다.
-all photos by SAV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