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Johaness Vermeer(요하네스 베르메르, 얀 베르메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가 되는데, 이 글에서는 '베르메르'라고 한다.)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구입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 플레이 모빌과 더불어 유럽여행에서 획득한 꽤 귀한 기념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플레이 모빌을 보고 있으면, 베르메르의 작품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떠오르고, 이 작품을 보았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떠오르고, 가까이 있는 반고흐 미술관이 떠오르고, 그 미술관 옆 옅은 안개가 낀 초록의 공원이 떠오르고, 공원 건너편 콘세르트헤바우까지 떠오른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이 플레이 모빌은 가짜(실제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가짜(그림 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가짜(플레이 모빌 여인)에 불과한 것인데, 어쩌면 사실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내 눈 앞에 현전해 있는 것은 오직 이 플레이모빌이고, 이 플레이모빌을 통해서 나는 그림과 그림 속 여인을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가톨릭교회와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나라들에서는 계속해서 성서적 역사화나 세속적 역사화가 지배적인 예술형식이었던 반면, 홀란트(네덜란드)에서는 종전까지 부속물로만 취급되던 대상들이 완전히 독립된 대상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풍속과 풍경, 정물 같은 모티프는 더 이상 성서적·역사적·신화적 구성의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가치를 얻었으며, 화가들은 이런 소재를 묘사하기 위해서 구구한 핑계를 갖다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재가 직접적, 구체적, 일상적일수록 그 예술적 가치도 그만큼 더 높았다. 여기서 그야말로 풍속화풍의, 조금도 거리감 없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역력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현실을 완전히 정복하고 이미 친숙해진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마치 현실을 금방 발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 자리잡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백낙청·반성완 옮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창비, 2016, 346-348쪽.
암스테르담을 떠올리면, 왜 이리 뭔가 스산해지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요...
-<우유를 따르는 여인> 그림 출처 : www.rijksmuseum.nl
-all photos by SAV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