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우유를 따르는 여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by 글쓰는 변호사
우유따르는여인플레이모빌.jpg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구매한 <우유를 따르는 여인(Milkmaid)>의 플레이모빌]

Johaness Vermeer(요하네스 베르메르, 얀 베르메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가 되는데, 이 글에서는 '베르메르'라고 한다.)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구입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 플레이 모빌과 더불어 유럽여행에서 획득한 꽤 귀한 기념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플레이 모빌을 보고 있으면, 베르메르의 작품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떠오르고, 이 작품을 보았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떠오르고, 가까이 있는 반고흐 미술관이 떠오르고, 그 미술관 옆 옅은 안개가 낀 초록의 공원이 떠오르고, 공원 건너편 콘세르트헤바우까지 떠오른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이 플레이 모빌은 가짜(실제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가짜(그림 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가짜(플레이 모빌 여인)에 불과한 것인데, 어쩌면 사실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내 눈 앞에 현전해 있는 것은 오직 이 플레이모빌이고, 이 플레이모빌을 통해서 나는 그림과 그림 속 여인을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우유를따르는여인.jpg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60년. 실제 그림 크기는 생각보다 상당히 작았습니다.]
가톨릭교회와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나라들에서는 계속해서 성서적 역사화나 세속적 역사화가 지배적인 예술형식이었던 반면, 홀란트(네덜란드)에서는 종전까지 부속물로만 취급되던 대상들이 완전히 독립된 대상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풍속과 풍경, 정물 같은 모티프는 더 이상 성서적·역사적·신화적 구성의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가치를 얻었으며, 화가들은 이런 소재를 묘사하기 위해서 구구한 핑계를 갖다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재가 직접적, 구체적, 일상적일수록 그 예술적 가치도 그만큼 더 높았다. 여기서 그야말로 풍속화풍의, 조금도 거리감 없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역력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현실을 완전히 정복하고 이미 친숙해진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마치 현실을 금방 발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 자리잡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백낙청·반성완 옮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창비, 2016, 346-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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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떠올리면, 왜 이리 뭔가 스산해지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요...


-<우유를 따르는 여인> 그림 출처 : www.rijksmuseum.nl

-all photos by SAV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