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파멸
신이 없는 시대에 인간은 종종 신이 되고자 한다. 생명창조라는 온전한 신의 영역에 개입하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신은 인간에게 이미 생명창조의 능력을 주었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 인간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창조'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불완전하다. 인간의 성적 결합은 기존의 유전자를 결합시키는 매개행위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그 유전자에 변형을 가해서 진정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 동물도 수컷과 암컷의 짝짓기를 통해서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만의 본질적인 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성적결합을 통한 고루한 방식의 생명창조에 만족하지 못한다.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제 인간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통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창조라는 존엄하고 신비한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항상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영화 <마녀>에서 인간들은 뇌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초인간적인 능력의 피조물을 탄생시키지만, 그 피조물은 결국 마녀 또는 괴물로 불린다. 피조물의 힘과 능력을 그것을 만든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는 힘은 제거되어야 한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용인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화 <마녀>는 통제되지 않는 힘을 소유하게 되어 마녀라 불리는 한 소녀와 그 소녀를 만들었지만 그 소녀의 힘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그녀를 제거하려는 자들의 싸움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초'능력자들의 액션은 신선했고, 최우식의 느끼하면서도 섬뜩한 연기는 극의 긴장감을 밀도있게 형성한다.
창조주는 때로 잔인하다. 자신이 만든 것이므로 자신이 파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창조주는 종종 자신의 피조물을 잔인하게 파괴한다. 자신의 계획과 필요와 목적에 따라 피조물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른 자는 다른 것일까. 소녀의 이상한 능력을 알고 두려움을 느낀 양아버지는 소녀를 버릴까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지만, 소녀를 길러 준 엄마는 예쁘다, 예쁘다하면서 사랑으로 기르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10년간 말 그대로 사랑으로 소녀를 키운다. 남들은 괴물이고 마녀라고 부르는 소녀이지만, 자신을 길러 준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인 것이다. 소녀가 밝고 맑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엄마의 사랑 덕분이다. 그러나 역시 소녀는 마녀 또는 괴물이라 불릴 만한다. 소녀가 양부모에게서 받은 사랑마저 어쩌면 소녀의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의 부제처럼) 결국 파멸을 불러올 것을 알면서도 소녀는 자신의 탄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자신의 창조주와 마주 선다. 영화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과연 진짜 살해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며, 따라서 마녀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고, 아직 더 많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2편이 꽤 기대되는 영화다.
-커버이미지출처 : 네이버 영화 <마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