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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un 03. 2019

문제는 검찰이다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 해 이루어진 '검사와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세 가지 점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첫째, 세상에 대통령이 일개 평검사들과 무릎을 마주대고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여과없이 국민들에게 중계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의 대통령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진풍경이었다. 민주적인 대통령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둘째, 검사들이 너무 '싸가지가 없어서'였다. 대통령이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니까 대놓고 굽신대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 노무현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대통령에게 이럴진대 수사의 대상인 피의자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불문가지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마따나 '목불인견'이었다. '검사스럽다'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셋째, 저 어처구니없는 대화가 끝나고도 저 무례한 검사들이 아무 일 없이 검사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다가 단죄를 했어야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은밀하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했어야 한다는 의미도 물론 아니다. 저런 무례한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조직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검찰이구나하는 점이 놀랍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검찰은 '검사스럽다'는 단어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갔다. 떡검, 섹검, 뇌물검, 스폰검이라는 말들이 생겨났다. 김기춘, 우병우, 홍만표, 진경준 등을 통해서 실체를 드러냈다.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리하게 수사를 하면서 대단히 비열한 방식으로 모욕감을 주었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표적수사 및 강압수사를 하면서 수사기록 누락 등의 위법수사를 자행하였으며, 정연주 전 KBS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하여 진보언론인을 사장시켰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PD수첩에 재갈을 물렸으며,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정치검찰의 작품이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검찰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구체적인 이유를 따지기 전에 누구나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들어 선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적임자이다. 동시에 반드시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가장 주요한 공약이자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것이므로, 적폐청산의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주권자인 국민과의 약속이다. 검찰개혁은 누가 집권하더라도 다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정부를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한 결정적인 방어책이다. 검찰개혁의 실질적인 첫 단추라 할 검-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검찰 고위층의 (산발적으로 보이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검찰개혁이 더는 늦출 수 없는 필요불가결하고 시급한 국가적·사회적과제임을 웅변한다. 김인회의 『문제는 검찰이다』는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그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검찰개혁의 로드맵과 실천적 매뉴얼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적폐청산이 시대적 과제라면, 적폐 청산 작업의 시작은 검찰 개혁이다. 현재의 검찰은 정치검찰과 부패검찰이다. 박근혜 정부의 끝을 알 수없는 부패는 정치검찰과 부패검찰이 있어서 가능했다. 검찰이 정치화되고 부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한이 초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권을 독점하고, 기소권을 독점하며, 기소 여부를 재량껏 결정할 수 있다. 누구든 수사할 수 있는 반면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구든 기소할 수도 있지만 기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권력은 검찰만 장악하면 사법적 단죄를 피해갈 수 있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할 수도 있다.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검사 퇴임 이후를 보장받는다. 정치검사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부정한 돈이 흘러 들어간다. 정치권력화한 검찰이 부패검찰이 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대단히 논리적이다. 검사 옷을 벗고 나와서 변호사가 되면 수임료로 손쉽게 몇 천에서 몇 억원을 챙긴다. 전관예우인 것이다. 현직검사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전관을 챙긴다. 


그렇다면 검찰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무엇인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권은 경찰에게 기소권은 검찰에게 주는 것이다. 비대한 권한이 거대한 비리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권한의 집중은 항상 권한의 남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수사는 수사전문가인 경찰이 하고, 기소 여부는 법률 전문가인 검찰이 하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킬 때,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 등 잘잘못을 기소 여부의 결정 과정에서 한 번 더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검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은 바로 수사권 조정이 검찰 개혁의 핵심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신설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정경유착 범죄, 권력형 비리 범죄 수사를 위해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반드시 신설해야 하는 것이다.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에는 대체로 검찰이 연루되어 있게 마련이고, 검찰은 검찰을 수사하지 못한다. 아니 수사하지 않는다. 이는 검찰이라는 수사기관 '위에' 또 하나의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검찰이 가지고 있지만 행사하지는 않는 권한을 '수평적'으로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생길 때, 권력형 비리를 일으킨 권력자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이외에도 저자는, 검찰 행정의 민주화를 위해서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의 과거사 정리, 검사의 기소권을 통제하기 위해서 재정신청제도의 확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할 경우 우려되는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형사공공변호인제도의 확대, 검사장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당장 현실화하기에는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이상적인 주장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 현실화해야 할 제도들이다. 검찰개혁이라는 거대한 과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다거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완수될 수 없으며, 다른 제도적 보완책과 함께 진행될 때에만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인회의 『문제는 검찰이다』의 부제는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이다. 검찰개혁이 단순히 국가의 한 기관을 개혁하는 데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정부를 다시는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터넷에 마음껏 하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진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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