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 단팥 인생이야기>/ 감독 가와세 나오미 주연 키키 키린
한 남자가 온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얼굴로 도라야끼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라야끼, 밀가루와 계란으로 반죽해서 둥글 납작하게 구워 낸 빵 두 쪽 사이에 앙꼬('앙' 또는 팥소, 이하 '단팥'이라고 합니다)를 넣은 화과자 말입니다. 2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가기 전까지 빈 시간을 때우려고 수다를 떨러 온 여중생 몇 명만 있을 뿐, 도라야끼가 먹고 싶어서 사러 온 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게 앞 아름드리 큰 벚꽃나무와 그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만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벚꽃 가득한 햇살 따스한 어느 봄날, 한 할머니가 가게를 찾아옵니다. 가게 유리창에 붙은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가리키면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남자는 70대 할머니가 하시기에는 고된 일이라며 거절합니다. 할머니는 시급으로 600엔이 아니라 200엔만 줘도 좋다고 하면서 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합니다. 남자는 완강합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불편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재차 거절합니다. 맛이나 보시라며 남자가 쥐어 준 도라야끼 하나를 들고,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머뭇머뭇 돌아갑니다.
그 날 오후 할머니는 다시 남자를 찾아 옵니다. 빵은 그럭저럭 먹을 만한데, 단팥은 영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고 도라야끼 품평을 합니다. 다시 한 번 일하게 해줄 것을 청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완강합니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비닐에 싼 통을 꺼내서 남자에게 주고는 축 처져서 돌아갑니다. 그 날 영업을 마칠 때쯤 남자는 생각난 듯이 가게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통을 열어 봅니다. 단팥이었습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봅니다. 놀라운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단팥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음 날 가게를 다시 찾아 온 할머니에게 남자는 일 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할머니는 흔쾌히 승낙합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사장님, 도라야끼에 넣는 단팥은 누가 만드는 건가요. 남자는 머뭇머뭇 대답을 못 하다가, 시판 업소용 단팥통을 들어 보입니다. 여러 번 노력해 보았지만 단팥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타 버리거나 굳어 버리거나 합니다,라고 변명합니다. 할머니는 경악합니다. 도라야끼의 생명은 단팥인데, 세상에 그런 팥을 쓰다니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이제 할머니가 단팥을 만듭니다. 우선 팥을 물에 불립니다. 물에 불린 팥을 체에 밭칩니다. 팥에서 나온 노란색 물이 어느 정도 빠지자 팥을 냄비에 붓고 끓입니다. 냄비에서 어느 정도 끓인 팥을 다시 체에 밭칩니다. 찬물로 헹구면서 물기를 뺍니다. 제대로 안 씻으면 떫은 맛이 남습니다. 씻은 팥을 다시 냄비에 넣고 물을 천천히 붓습니다. 막 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는 끓입니다.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의 냄새'가 달라질 때까지 끓입니다. 불을 끄고, 뜸을 들입니다. 복잡하다고 하는 남자에게 할머니는 극진히 모셔야한다고 말합니다. 밭에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으니 팥을 극진히 모셔야 된다고 말입니다. 냄비째 개수대로 옮겨 찬물을 약하게 틀어 놓습니다. 익은 팥은 연약해서 으깨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떫은 물을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팥이 담긴 물이 투명해질 때까지 흘려 보냅니다. 그 팥에 설탕을 섞습니다. 바로 졸이지 않습니다. 팥이 당과 친해질 동안 조용히 기다려줍니다(할머니는 맞선 같은 일이니 이제 뒷일은 젊은 남녀에게 맡기면 된다고 합니다). 그 후 2시간 정도 끓여 줍니다. 자, 이제 드디어 단팥이 만들어졌습니다.
남자는 할머니가 만든 단팥을 넣어 도라야끼를 만듭니다. 도라야끼를 한 입 먹어 봅니다. 하나를 다 먹습니다. 남자는 도라야끼를 끝까지 다 먹은 것이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놀랍니다. 도라야끼를 파는 사람이 도라야끼를 싫어하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단 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술이랍니다. 그럼 술집을 할 것이지 왜 도라야끼 가게를 하냐고 하자, 남자는 과거에 어떤 일로 도라야끼 가게 사장에게 큰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으려고 그 사장네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단팥 맛이 달라졌다는 것을 금세 알아 차립니다. 시판 업소용 단팥과 할머니의 단팥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가게문을 열기 전부터 도라야끼를 사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무더운 여름, 날은 덥지만 장사는 잘 됩니다. 그런데 더위가 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깁니다. 할머니의 굽은 손과 얽은 피부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가게 사장이 찾아 와 남자에게 할머니를 해고하라고 말합니다. 할머니도 달라진 공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납니다.
가게는 할머니가 오기 전으로 돌아갑니다. 활기가 없습니다. 남자는 다시 온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얼굴이 되어 담배만 피우고 있습니다. 할머니를 소문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큽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이 옵니다. 남자가 기운이 빠져 있을까봐 걱정이 돼서 보낸 편지인 것이지요.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 왔을 비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팥이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들을 듣는 일이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햇빛이나 바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또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요. 사장님은 언젠가는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라야끼를 만들어낼 거라 믿습니다.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장님은 해낼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 도라야끼 가게 사장은 가게를 리모델링합니다. 오코노미야끼도 같이 팔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시설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시설에서는 할머니가 평소 좋아했던 벚꽃나무 한 그루를 할머니를 위해 심었습니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유품으로 단팥을 만드는 도구와 녹음테이프를 남겨 놓았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 큰 남자는 하염없이 웁니다.
우리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다시 봄이 되었습니다. 공원에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가판대에서 남자가 도라야기를 굽고 있습니다. 공원에는 봄을 맞아 벚꽃놀이 하러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자는 "도라야끼 왔어요! 도라야끼 사세요!"라고 크게 외칩니다. 남자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보입니다. 조금,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