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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un 15. 2019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

알베르토 베빌라콰

페데리코는 외로운 노인이다.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은 멀리 떠났고 연락도 오지 않는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장은 있지만,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찾을 수 있는 직장도 아니다. 그는 희망을 갖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다. 희망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내내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사랑과 믿음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페데리코는 정말로 외로운 노인이다.


혼자서 저녁을 먹은 어느 크리스마스날 고요한 한밤중, 페데리코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수화기 너머에는 어떤 여자가 있다.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섞여 있었다." 여자는 열다섯 살 때부터 페데리코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자를 알지 못한다. 당신은 누구냐는 페데리코의 질문에 여자는 "당신이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한다. 여자는 페데리코의 인생을 잘 알고 있다. 결혼은 누구와 했으며,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해왔고, 심지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단순한 장난전화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그 뒤로도 며칠 사이에 몇 번의 전화가 더 걸려 왔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전화로 말해 준 것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침대에서 페데리코가 보인다는 것.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페데리코의 사진이 놓여 있다는 것. 어쩌면 페데리코를 알게 된 순간부터 몇십 년간 페데리코를 남몰래 사랑해 온 사람이라는 것. 페데리코는 그녀를 찾으려 한다. 무작정 집 주위의 건물들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골라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발신자 추적 신청을 한다. 


그날 밤 아주 늦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간신히 "페데리코......"라고 그의 이름을 부를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칠게 숨을 쉬며 가까스로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다급하게 외쳐 보지만, 목소리는 끊기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페데리코는 다음 날 아침 발신자 추적 결과를 알려 주는 전화를 받는다. "세실리아......" 그는 그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 본다. 그날 그는 발신자 추적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주소로 찾아 간다.


세실리아는 그에게 마지막 전화를 건 그날 밤, 죽었다. 그는 세실리아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무살 시절의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다. 세실리아의 집에 있던 한 소녀는 낯선 외부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지도 않고 누구냐고 담담히 묻는다. 그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면서 "아무것도 아냐, 아무 일도 아니야, 난 아무도 아니거든."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실리아의 방에 걸려 있는 크리스마스가 표시된 달력을 찢어버린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대본 출처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_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 살림, 2003, 195p.~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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