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소년은 친구인 맹간의 누나를 연모한다. 그 감정 혹은 사랑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소년은 같은 동네 사는 그녀를 그저 오며가며 마주치는 정도이고, 어쩌다 한두 마디 하는 것 외에는 말을 건네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소년에게 "그녀의 이름은 온몸의 어리석은 피를 모아들이는 소환장"과도 같다. 소년의 몸은 "하나의 하프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하프 타는 손가락과도 같았다."
소년은 그녀에게(또는 그녀에 대한 연모의 감정에) 완전히 들려있다. 소년은 어디서나, 사람들로 혼잡한 시장통에서도, 그녀의 영상을 떠올린다.
상상 속에서 나는 성배(聖杯)를 안전하게 나르기 위해 적의 무리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도와 찬양을 되뇌이는 순간 나의 입가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러는 가운데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때때로 나의 심장에서 무언가가 홍수처럼 흘러 넘쳐 내 가슴에 가득 고이는 것만 같았다.
때로 소년은 정말로 주체하기 어려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감각은 감각 자체를 감춰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고, 그런 감각으로부터 내가 막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두 손바닥을 마주한 채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아, 사랑이여! 아, 사랑이여!"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지나가듯이 애러비 장에 갈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소년은 가게 되면 그녀에게 뭐라도 사다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어쩌면 그녀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부터 소년의 머릿속에는 온통 토요일의 애러비 장 생각뿐이다.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장에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주기로 한 아저씨(소년은 친척 아저씨, 아주머니와 살고 있는 듯하다)는 밤 아홉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손에 쥐고 달려 나가 장으로 가는 특별열차를 타고 장터에 도착하니 시간은 열 시 십 분 전. 거의 모든 가게의 문은 닫혀 있었고, "예배가 끝난 다음의 교회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소년은 열려 있는 매점들 중 한 곳에 가서 사기로 된 꽃병과 꽃무늬가 있는 찻잔 세트를 들여다본다. 그녀에게 줄 선물을 사려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물건을 팔려는 마음이 별로 없다. 소년은 가게 앞을 서성거릴 뿐이다. 애러비 장의 불은 이제 거의 완전히 꺼져서 어두컴컴해지고 있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나는 허영에 몰려 웃음거리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뇌와 분노로 타오르고 있는 나의 눈도 볼 수 있었다.(Gazing up into the darkness I saw myself as a creature driven and derided by vanity; and my eyes burned with anguish and anger.)
22년 전에 <애러비>를 처음 읽었고, 그로부터 22년 후인 오늘 <애러비>를 다시 읽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2년 전에 느꼈던 감정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쓸쓸함과 처연함. 좌절과 분노. 격정과 부끄러움. 주체할 수 없는 감정. '2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싶다.
-애러비 장 이미지 출처 : www.eng-literature.com/2015/10/araby-short-story-by-james-joyc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