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모베리(Vilhelm Moberg)
티볼리는 종합 놀이공원이다. 극장, 버라이어티 쇼, 곡마단의 음악당, 장바닥, 소형 유람철도,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여행자들이 유흥을 위해 많이 찾는다. 이곳 티볼리의 소형 유람철도와 거대한 목마 사이의 약간 그늘진 곳에서 30년 넘게 독심술과 성격해설을 생업으로 살아 온 남자가 있다(우리로 치면 유원지나 놀이공원 한 켠에서 사주나 손금 타로카드점을 보는 사람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원래 칼레 브루센이었던 그의 이름은 어반 브루젤리. 그러니까 어반 브루젤리는 독심술사 겸 성격해설자이다.
어반에게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의 외모, 의복, 표정, 몸가짐 등을 하나씩 꼼꼼히 관찰하고 판단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과 성격과 살아 온 인생은 감추려 해도 얼마간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심술과 성격해설을 하기 위해 영혼 내부까지를 꿰뚫어 볼 필요는 없는 셈이다. 게다가 그는 대가로 단돈 1크로나라는 적은 돈만을 받기 때문에 반이 틀리더라도 손님들의 불만은 없었다.
독심술사 어반은 원래 공무원이었다. 그는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부인이 있었으며, 어느 모로 보나 모범적인 시민이었고, 공동체의 건전한 일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술을 입에 대면서 주정뱅이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내 직업을 잃었고, 사회적 지위를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집을 잃었고, 아내를 잃었다. 급기야 이름마저 잃고, 놀이공원 한 켠에서 독심술사로 30년을 살아 온 것이다. 그의 이런 비참한 몰락은 아내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내에 대한 변하지 않은 사랑 때문이었다.
사람이란 어쩌다 보면 동시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동시에 깨어지지 않는 수도 있는데 이건 좋은 일이 못 된다. 가장 심각한 비극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30년 전 내게 닥쳤던 비극이었다. 나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식어갔는데 아내에 대한 내 감정은 전이나 다름없이 열렬하고 강렬했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서 전에 내게 바쳤던 모든 것을 그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했으므로 그녀의 육체를 다른 남자와 나눠 갖는 모욕까지도 참았다. 그러나 고민을 달랠 길이 없어 알콜에 안식을 구했다.
손님이 뜸한 어느 날 밤이었다. "가까이서 늘 마시는 독주 한 잔에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점을 사면 한 푼도 안 남는" 돈밖에는 못 번 날이었다. 나이 든 남녀 한 쌍의 손님이 왔다. 옷차림과 동작으로 보아 부유한 계급이다. 남자손님의 말투는 고압적이고, 거만함이 몸에 배어 있다. 여자손님은 마지못해 따라 온 것 같다. 여자손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독심술사 어반은 어둠속에서도 그 여자손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린다. "한 사나이가 일찍이 사랑하던 여자의 음성이란 잊으려야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어반은 남자 손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남자 손님에 대한 독심술과 성격해설을 하면서 혹시 틀릴까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은 당신 생애에서 여러 번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이 목적한 바를 얻었습니다. 그 한 예로 당신의 결혼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현재 부인이 전남편과 살 때도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당신이 그의 아내를 훔쳤다고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반은 그 중년 남녀 손님의 결혼 생활에 대해 계속 얘기한다.
"당신은 느끼지 못합니다. 느끼는 능력이 전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부인을 사랑한 일이 없습니다. 당신에게서 냉정 이외에 아무것도 경험한 일이 없습니다. 당신 결혼은 이렇게 오랫동안 불행했습니다. 당신 부인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등지고 당신 품으로 달아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독심술사의 이와 같은 말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기만적인 자기 위로에서 나온 독단적 추측에 불과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이 말을 들은 여자의 입에서 '조그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독심술사가 30년 만에 제대로 복수를 한 것일까?
그날 밤 마음씨 착하고 유약한 독심술사가 편안히 잠이 들 수 있었을까.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가 마음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잠을 설치지 않았을까. 아마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독주 한 사발이 필요한 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독주와 돼지고기를 살 돈이 있었을지 걱정이다. 그 중년의 남녀 손님-사랑하는 아내와 아내를 빼앗은 원수-이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황급히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외상으로라도 독주 한 잔 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