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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ul 05. 2019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유미주의(唯美主義). 예술을 위한 예술. 유미주의는 인간사의 많은 문제를 도외시하고 예술이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얄팍한 믿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태도나 믿음이 아닐까.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나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아름다움과 선함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한 양식이 유미주의일 것이다. 아름다움과 선함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또는 그 노력의 결과로서 (운이 좋다면) 인생의 진리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분별하는 이성은 진리/선함/아름다움을 날카롭게 구별해 왔다. 진리는 개별 분과학문이, 선함은 윤리학이, 아름다움은 예술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 영역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기보다는 각 영역에 자신만의 두터운 장벽을 쌓고 참된 교류를 포기한 상태로 보인다. 진선미를 널리 아우르는 통일적 사유와 태도가 요청되는 이유다. 한때의 유행이자 겉멋으로 치부되었던 유미주의를 예술사의 무덤에서 불러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그리고 그 때 가장 먼저 부활해야 할 자는 바로 오스카 와일드일 것이다.

 



여기 높고 둥근 기둥 위에 행복한 왕자의 조상(彫像)이 서 있다. 두 눈에는 사파이어가 박혀 있고, 온몸은 순금이고, 칼자루에는 루비가 빛나고 있다. 왕자는 죽기 전에는 왕궁에서 마냥 행복했지만, 죽고 나서 조각상이 되어 높은 곳에 있다보니 도시의 온갖 슬픈 것, 추한 것을 모두 보게 된다. 그래서 비록 그의 심장은 납으로 되어 있지만 울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다. 어느 날 그는 동료들을 따라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 제비를 붙잡고 부탁을 한다.


바느질삯으로 아픈 아이를 돌보며 힘겹게 살고 있는 여인에게 칼자루에 박혀 있는 루비를 뽑아서 가져다주기를.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더 이상 글을 쓰기 힘든 처지에 놓인 가난한 예술가에게 한쪽 눈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를 뽑아서 가져다주기를. 성냥을 전부 하수구에 떨어뜨려서 서럽게 울고 있는 가난한 성냥팔이 소녀에게 다른 쪽 눈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를 뽑아서 가져다주기를. 자신의 몸에 덮여 있는 순금을 한 조각씩 벗겨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이내 왕자는 흉한 몰골이 된다.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따뜻한 곳으로 제 때 가지 못한 제비는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한 채 왕자의 입술에 키스하고는 그의 발 밑에 떨어져 죽는다.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찬양하던 왕자가 흉하게 되었다며 조각상을 용광로에 넣어서 녹여 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납으로 된 그의 심장은 녹지 않는다. 신(神)은 천사 한 명에게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개를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고, 천사는 왕자의 납으로된 심장과 죽은 제비를 신에게 가져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세상의 남자와 여자의 슬픔이라는 거야.
슬픔보다 더 큰 신비는 없단다.


오스카 와일드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슬픔보다 더 큰 신비가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슬픔이라는 정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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