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와 손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다
몇 주 전쯤 아내가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라며 해 준 이야기입니다.
남자 세 명이 치킨집에 들어왔습니다. 사장님은 반갑게 인사를 했겠죠. 어서오세요. 세 남자는 곧바로 자리잡고 앉지 않고 머뭇머뭇하다가 선 채로 사장님께 질문을 합니다. "치킨 반 마리도 되나요?"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사장님의 표정은 살짝 굳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바꿉니다. 네...됩니다. 세 남자는 자리를 잡고 앉더니 사장님께 주문을 합니다. "여기 치킨 여덟 마리 반 주세요~!"
#세 남자와 치킨 여덟 마리 반
우선 치킨 여덟 마리 반을 주문한 이 세 남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 글에 상세히 묘사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세 남자는 아마도 20대 초중반 혹은 많아야 30대 초반일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혼자서 치킨 한 마리를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저들은 무려 1인당 2마리 반 이상을 먹은 것입니다!). 세 남자는 함께 치킨 여덟 마리 혹은 아홉마리를 먹은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덟 마리는 좀 부족하고 아홉 마리는 좀 많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세 남자는 꽤 오래된 친구이거나 아니면 마음에 맞는 친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함께 여러 차례 치킨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농구와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한 후 치킨을 먹는 '치킨계'를 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킨 여덟 마리 반이면, 한 마리당 평균 2만 원이라고 할 때, 16만 원이 넘는 작지 않은 돈이니 혼자 내기는 다소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세 남자는 약간 소심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치킨 여덟 마리 이상 주문하는 상황에서도 조심스럽게 수줍어하며 '반 마리'가 가능한지를 묻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치킨집 사장님에 대한 속깊은 배려심이 느껴집니다. 하긴 치킨을 한 자리에서 2마리 이상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수가 없지요(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하).
#치킨집 사장님
건장한 성인 남자 세 명이 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 사장님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세 명이니 최소 2마리 이상은 먹을테고 거기에 맥주가 빠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웬걸. 반 마리라니. 세 명이 와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고작 치킨 반 마리를 주문하다니...사장님은 분명 순간적으로 갈등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4명 손님을 맞아서 꽤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고작 반 마리를 팔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표정이 굳었을 것입니다. 고민합니다. 반 마리를 팔까 말까. 고민하던 사장님, 결정합니다. 그래, 그래도 우리 집을 찾아 온 손님인데, 세 명이든 네 명이든, 반 마리든 한 마리든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이렇게 결심한 사장님은 흔쾌히 답했을 것입니다. 네, 반 마리 됩니다! 참다운 주인다운 멋진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손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신의 가게를 제 발로 찾아와 준 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최대한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상인은 당연히 최대한의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해야 하지만, 가끔은 눈 앞의 이익을 살짝 미뤄두는 모습도 인간적입니다. 사장님이 마음을 약간 비우고 '반 마리, 됩니다!'를 외치는 순간, 여덟 마리가 딸려 오는 작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개업 변호사는 (법적으로 상인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자영업자와 상황이 똑같습니다.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서 때때로 저를 당혹스럽게 하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상황들이 많지만, 결국 간단히 말하면 '세 명이 와서 치킨 반 마리' 주문하는 상황같은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옵니다. 아, 이 정도 보수 받아서는 할 일이 아니구나. 손이 엄청 많이 가겠구나. 이 의뢰인은 부당한 요구를 하겠구나. 법률시장의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졌다고 해도 도저히 그 정도 보수로는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하느니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런데 한편 달리 생각해 보면, 치킨 반 마리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튀겨서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제 발로 저를 찾아 온 손님입니다. 보수가 업무의 난이도에 비해서 많든 적든 우선 감사한 마음으로 사건을 맡아서 성심성의껏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인한도를 넘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치킨 반 마리 주문을 받으면 이게 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재고 있겠지요. 하지만 가끔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반 마리, 됩니다!'를 외쳐 봐야겠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죠. 여덟 마리가 같이 딸려 오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하하.
@커버이미지
-처갓집 슈프림 순살치킨입니다(한 마리입니다). 요즘은 맛있는 치킨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가 나이 들어서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죠.) 몇 년간, 이 치킨 저 치킨 방황하다가 최근에 간신히 정착한 치킨입니다. 꽤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