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인간의 얼굴을 한 윤회의 시간

by 글쓰는 변호사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는 감독이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감독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집에서 함께 살았던 멕시코 원주민 하녀 클레오에 대한 기억을 어른이 된 쿠아론이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이야기다. 누구나 어린이였을 때 이해되지 않던 어른들의 행동이 어른이 되면 이해되는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 영화는 클레오에 대한 이야기이고, 클레오가 바라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클레오의 눈에 비친 어린 쿠아론과 쿠아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어린 쿠아론은 그 당시 클레오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 클레오에 대한 어린 시절의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을 어른 쿠아론도 그 불완전한 기억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는 당연히 클레오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쿠아론은 이야기하거나 설명하기 보다는 단순히 보여주기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가 클레오를 비출 때 이 영화는 인물화가 되고, 자연을 보여줄 때 이 영화는 풍경화가 되며, 사물을 잡을 때는 이 영화는 정물화가 된다. 쿠아론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로 전달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작품이었다"(2018. 12. 12. 씨네 21 참조)라고 했는데, 영화의 본령이 결국은 '이야기하기'가 아닌 '보여주기'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이해가 된다.


로마2.jfif [클레오는 뭐 해?-나도 죽어서 말 못 해. 페페, 죽어 있는 것도 괜찮다]


클레오는 하녀로서 주인과 그 자녀들(이 자녀 중 한 명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의 시중을 들고,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개똥을 치우고, 아이들을 재운다. 어느 날 동료 하녀의 소개로 페르민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페르민은 부모 없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하면서, 오직 무술을 연마하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일이었는데, 이제 클레오를 만난 일이 무술만큼 세상을 확실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일이라고 고백한다. 클레오는 페르민의 아이를 임신하고, 페르민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페르민은 클레오를 떠난다.


출산이 임박하여 아이 침대를 사러 가구점에 간 클레오는 진압대에 쫓겨 들어 온 시위 학생을 만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 초인데, 멕시코도 우리나라만큼 격동의 현대사였던가 보다(하긴 그 시기에 격동기가 아니었던 나라가 있기나 할까). 학생은 가구점에서 총에 맞아 죽는데, 클레오는 그 학생을 쫓아 온 시위진압대원들 사이에서 총을 들고 있는 페르민을 본다(사실 페르민이 익히고 있던 무술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었고, 그 교관 중에는 한국인도 있다. 박정희 정권이 수출을 국시로 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시위 진압 무술 교관까지 수출을 했을 줄이야). 클레오는 그 자리에서 하혈을 하고, 병원에 실려 가서 사산을 한다. 클레오는 자기 때문에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하면서 울먹이지만, 그녀 때문에 아이가 죽었겠는가. 우리의 7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시대 자체가 생명을 품기 어려운 불임의 시대였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에 얼마간의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고해서 감독이 역사의 광풍 앞에 날아간 가여운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희생된 연약한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 <로마>는 주어진 시간을 그저 살아갈 뿐인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페르민에게 버림받은 이후에도, 사산을 한 이후에도 클레오는 여전히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개똥을 치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소피아(클레오의 고용인, 아마도 감독의 어머니) 역시 상처를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툭스판 해변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거리는 바닷물결을 배경으로,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서 클레오와 소피아와 아이들이 어깨를 걸고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모습은, 그래서 찬란하게 아름답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무척 가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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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터뷰에서 쿠아론 감독은 "개인적으로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라고 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말의 의미가 정확히 와 닿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로마>에서 페페(막내아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알폰소 쿠아론으로 추정된다)는 클레오에게 두 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파일럿이었어. 클레오도 있었는데 클레오는 다른 사람이었어.", "내가 늙었을 때 뱃사람이었는데, 폭풍이 칠 때 물에 빠져 죽었어." 페페가 아직은 망각하지 않고 있었던 전생을 이야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어린아이 특유의 헛소리를 내뱉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듦으로써 계속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윤회의 시간에 어떤 매듭을 짓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윤회의 중심에 클레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클레오에 대한 이야기로 그 매듭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으로써 영문 모른 채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응어리를 풀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미지 출처-다음 영화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