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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Sep 22. 2021

프로이트 뮤지엄에서

런던, 2018년 2월 3일

프로이트를 처음 만나게 된 건 고등학교 친구 덕이었다. 무척 친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내 생일에 <꿈의 해석>을 선물해 주었다. 책의 속지에 뭐라고 잔뜩 적어 놓았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나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문구다. 아쉽게도 그 이후 <꿈의 해석>을 읽고 그 친구와 대결(?)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아무튼 위대한 사상가의 위대한 저작(1900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은 20세기 사상의 지형도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야 하는 작품이다.)을 읽을 기회를 준 그 친구에게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대학생 때, 김상환 선생님에게서 프로이트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매 강의시간이 감탄과 환희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인간 정신에는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도 있다는 것,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은 광대무변하다는 것. 정신의 지도를 그려내기 위한 프로이트의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열정과 탐구 정신. 자신이 세운 이론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특히 쾌락 원칙을 넘어서 죽음 충동을 말하는 장면은 감동과 충격의 순간이었다.


그때 이후 나는 기꺼이 프로이트가 세운 정신분석학이라는 제국의 신민이 되었다. 아직 프로이트를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프로이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프로이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내 목표 중의 하나다. 




2018년 2월 런던 여행 중,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런던 시내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프로이트 뮤지엄을 어렵게 찾아갔다. 20 Maresfield Gardens... 지구 상에서 프로이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 프로이트는 1938년 나치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피해 런던의 이곳으로 이주했고, 1939년 이곳에서 사망한다.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책상, 환자에게 정신분석을 할 때 사용하던 카우치, 카펫, 책, 그림 그리고 골동품 컬렉션을 모두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저 책상에 앉아서 연구를 하고, 책을 썼구나, 내가 지금 프로이트가 숨 쉬고 사색에 잠기고 공부를 했던 곳과 같은 공간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온 몸에 전율(말 그대로 전율!)을 느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너무도 황홀해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방 안에 가득한 골동품, 고대의 유물들 때문이었을까. 아주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기분도 들었다. 이 방 자체가 인간 정신의 신비를 조용히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전시되어 있는 골동품들은 프로이트의 고고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에게 고고학과 정신분석학은 표층을 파헤쳐 지층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인류와 문명 전체에 대한 지적 탐구의 결과물(<문명과 그 불만>, <토템과 타부> 등)을 남겨 놓았다. 인간 정신을 탐구하던 도구를 가지고 인류와 문명에 대한 탐구도 수행한 것이다. 인간 정신의 두터운 지층을 탐사하면서 그 어두운 비밀을 벗겨낸 손으로 문명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인류가 봉인해 놓은 어두운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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