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변호사 Sep 13. 2021

테주강(Tejo)에서

리스본, 2016년 12월 8일

강이라고 해서 강인 줄은 알았지만, 강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면 바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탁 트인 코메르시우 광장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이 거대한 강은 테주강이다. 이 강은 마드리드 동쪽에서 시작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와서 대서양으로 흘러드는데, 스페인어로는 타호강이라고 하고, 포르투갈어로는 테주강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이 강을 만났으므로, 나는 이 강을 테주강이라고 부른다. 강의 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갈매기들이 많이 날아다녀서 강인지 바다인지 더 헷갈렸던 것 같다. 


테주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가 보인다. 4월 25일 다리. 1974년 4월 25일 살라자르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카네이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인데, 원래의 이름은 '살라자르 다리'였다고 한다.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면서 다리에 붙은 독재자의 이름도 지움과 동시에 혁명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카네이션 혁명은 우리로 치면 4.19 내지는 87년 6월 항쟁에 비견될 수 있는 혁명일 것이다.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가 소설 속 책인 <언어의 연금술사>를 매개로 프라두의 행적을 좇는데, 카네이션 혁명이 소설의 배경을 이룬다. 고전문헌학 교사인 그레고리우스는 왜 갑자기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 것일까.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는 카네이션 혁명을 얘기하기 위해 왜 하필 그레고리우스 같은 사람을 화자로 설정한 것일까. 

밤의 테주강. 테주강의 밤. 우리는 밤의 테주강을 바라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아마도 영원히 잊기 어려울, 테주강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거대한 유람선이 불을 밝힌 채 테주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 나이가 더 많이 들면, 그러니까 대략 20년 후쯤, 유람선을 타고 유럽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다. 그때 이곳 리스본을, 리스본의 테주강을 지날 것이고, 아마도 그때도 이 강이 강인지 바다인지 헷갈릴 것이고, 2016년 12월에 이곳에서 돌벽에 발을 올리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리스본의 밤을 기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스본 대성당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