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2016년 12월 8일
유럽에서 많은 성당을 보았지만, 리스본 대성당만큼 마음속에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성당은 드물었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은 크고 육중해서 범접하기 어려운 인상이고,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소란스러운 관광지 속 화려한 관광상품 같은 느낌이다. 톨레도 대성당은 덩치가 크다는 것 외에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너무 세련되고 멋을 부린 느낌이라 여러 번 보면 약간 질리는 것 같기도 했다. 리스본 대성당, 이 작고 낡고 초라해 보이는 오래된 성당을 보면, 따뜻하고, 이유 없이 슬프고, 그래서 아련하다.
리스본 대성당이 나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성당에서는 그곳 사람들이 미사를 보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리스본 대성당에서는 리스본 시민들이 성당에 나와 미사를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미사에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나와 아내도 그곳에 그 순간에 함께 있었다. 우리 뒤에서는 한 가족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빠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졌을까. 그가 무엇을 기원하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기를 바란다.
리스본 대성당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당 앞을 지나는 28번 트램이다. 유명한 관광상품이 되어 버린 탓인지 트램 안에 소매치기가 많다고 한다. 대성당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노인이 기억난다. 아마도 28번 트램 안에서 소매치기를 만난 것이었겠지(우리는 다른 트램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 동유럽 소매치기들이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으로 대거 이동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난의 대이동이다. 가난은 정주하지 못한다. 가난은 이동해야 살 수 있다. 소매치기의 대이동도 바우만이 말한 '액체사회'의 한 (살)풍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