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그리고 출발 #12-걷기, 카페, 에스프레소 그리고 담배
첫 번째 유럽여행 동안 우리가 파리에서 한 일은 걷기,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기, 그리고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담배 피우기였다. 파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꼭 보아야 한다든가 어디를 꼭 가야 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사전에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뮤지엄 패스 6일권을 사서 파리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탈탈 털어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파리의 낯설고 불친절한 공기는 까닭 모르게 우리를 주눅들게 했고,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인파는 처음부터 기를 죽였다. 마음은 위축되었고, 몸은 피로했다.
그런데 우리가 파리에서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무계획적으로 돌아다닌 데에 소극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걷는다는 것이 무척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고, 카페의 아웃사이드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루브르의 인파에 떠밀리며 잘 보이지도 않는 모나리자를 먼 발치에서 까치발을 하고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으며,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서울의 사무실 옆 좁은 흡연구역에 갇혀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천만 배쯤은 더 맛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파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걷기, 카페, 에스프레소 그리고 담배다.
#파리의 아우라를 느끼며 걷다
파리는 풍경으로 열려 있는 공간이며 산책자에게 알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공명(共鳴) 상자다. 파리 곳곳에는 상상을 자극하는 신비한 분위기가 있다. 파리의 공간 속에는 일상적 의식을 넘어서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술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부한 '아우라'가 숨 쉬고 있다. 파리에는 하나의 건물, 하나의 분수대, 한 그루의 가로수가 배경 속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파리의 아우라다.-정수복,『파리를 생각한다』, 문학과지성사, 2009, 98쪽.
우리의 걷기는 대체로 개선문(Arc de Triomphe)에서 시작되었다. 12갈래의 방사형으로 뻗은 길들이 시작되는 그 곳.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다. 누구나 생각하는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라뒤레에 들러 마카롱을 사기도 하고, 아베크롬비 앤 피치의 화려한 금박 철문을 사진찍기도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역을 지나며 '왜 파리의 지하철역 이름을 다른 나라 대통령의 이름으로 지었을까' 궁금해하기도 하다가 그랑팔레 옆 정원에서 잠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윈스턴처칠가를 지나면서 그랑팔레의 거대함에 놀라고, 프티 팔레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본다. 무슨 전시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줄을 설 만 하구나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윈스턴 처칠 기념비 앞에서 처칠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가던 길로 조금만 더 걸어 가면, 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만나게 된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쉽게 건너기 어렵다. 다리에 설치된 여러 동상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꼼꼼히 들여다 보게 된다. 다리 위에서 보이는 에펠탑은 어쩐지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야 할 것만 같다. 다리를 건너서 화려한 금박으로 치장된 돔이 돋보이는 앵발리드로 간다. 앵발리드보다는 길(앵발리드 가) 하나 건너 편에 있는 로댕 미술관이 더 좋다. 일요일 같은 느낌의 로댕 미술관. 로댕 미술관은 내부보다 외부가 더 좋다. 미술관 정원 곳곳에 로댕의 유명 작품들(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이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정원에 있는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행복하다.
그랑팔레와 프티팔레에 현혹되지 않고 샹젤리제 거리를 계속 걸어 내려가서 곧장 콩코드 광장으로 가기도 한다. 어쩌면 파리에서 가장 마음 편히 그림을 즐길 수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이 나온다. 파리의 많은 미술관 중 딱 한 군데만 갈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오랑주리 미술관을 갈 것이다. 그 곳에서 본 모네의 <수련>은 충격적이고 황홀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예술 작품을 '체험'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모네의 <수련>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파리는 충분히 갈만한 가치가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오면 튈르리 정원이다. 거대한 원형 분수를 둘러싸고 놓여 있는 철제 의자에 몸을 부린다. 그림을 보느라 긴장한 다리와 머리를 풀어준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운다. 바게뜨 빵가루가 비둘기들을 불러 모은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아이들이 뛰어 다닌다. 파리 시민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튈르리 정원을 뒤로 하고 다시 걷는다. 카루젤 개선문을 만난다. 우리끼리는 '쁘띠개선문'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던 곳이다. 간이 이동형 매장으로 설치된 <PAUL>에서 에스프레소를 사서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아마도 이민자 혹은 난민일 흑인들이 '파이브 원유로' '파이브 원유로'를 외치며 에펠탑 모형 열쇠고리를 팔고 다닌다. 나는 수줍게 원유로를 건넨다. 에펠탑이 부딪히며 짤랑거린다. 루브르 지하아케이드로 들어간다. 어쩌면 이곳이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뇌까리며 과거의 그림자를 밟았던 주인공이 걷던 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아니었을까라고 멋대로 생각하며 그의 그림자를 밟아본다.
루브르를 나와 퐁데자르를 건넌다. 앞서 가는 파리의 여인이 담배를 피운다. 오 여기서도 되는구나! 세느강을 따라 걸으며 담배를 피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위에 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우위다. 헌법재판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했으니 혐연권은 무소불위다. 금연파시즘에 가깝다. 안다. 담배냄새는 역겹다. 건강에도 해롭다.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 된다. 길에서 걸으면서 피우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그건 (우리나라에서는) 교양없고 몰상식하고 미개한 행동이다. 다 안다. 파리에 사는 사람이라고해서 타인의 담배 냄새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운다. 신경쓰지도 않는다. 유모차를 끌며 피운다. 걸으며 피운다. 카페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버스정류장에서 피운다.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여행자의 특권이다. 자유다. 세느강 바람을 맞으며 피운다. 세느강을 지나가는 바토무슈를 본다. 배에 탄 사람들의 시선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향한다. 어쩐지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과 마리 아르누가 세느강을 지나는 배에서 만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퐁뇌프 다리를 건넌다. 시테섬이다. 콩시에르주리를 거쳐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선다(무사히 복원되기를). 조금 떨린다. 콰지모도 때문이겠지. 수많은 사람들. 줄서기는 포기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간다. 작고 오래된 알찬 서점. 서울에서도 많이 보이는 에코백을 하나 산다. 서점 앞 벤치에 앉아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소르본 대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르본 대학(파리4대학)에서 데카르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철학과 교수님을 떠올린다. 대학 시절 교수님께 데카르트와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철학을 배우던 행복한 시간을 추억한다. 철학의 재미를 알아가던 시간이었다. 나도 만약 철학 공부를 계속했다면, 여기 소르본에서 공부를 했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데카르트를 공부하는 괴로움과 답답함을 떠올리며 한편으로는 철학 공부를 계속 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소르본 대학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점심은 꼬꼬뱅이다. 생각보다는 맛이 없다. 식사 중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팡테옹으로 간다. 문이 닫힌 팡테옹에서 앞에서 독일에서 온 한 아주머니가 망연자실 서 있다. 내일 독일로 가야 하는데 팡테옹이 오늘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나누며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울 것도 없다. 팡테옹이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대학가 근처라서 그런가, 카페가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팡테옹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뤽상부르 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공원이 크고 넓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불어오는 바람에 물줄기가 춤을 춘다. 파리의 대학생들이 떠들며 초코바로 점심을 먹는다. 생기가 넘친다. 젊음이 부럽다. 계속 걸어서 카페 드플로르와 카페 레 뒤 마고로 간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이 길 건너 보이는 레 뒤 마고에 자리 잡는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떠올린다. 카페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이 실존주의를 낳았겠지. 『존재와 무』를 쓰도록 했겠지. 파리의 거리를 걷다 보면, 혹은 파리의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 보면,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대명제에 동감하게 된다. 어떤 본질로 규정되지 않는 (존재의) 자유의 냄새가 난다.
때로 개선문에서 걸어 내려오다가 샹젤리제 거리고 계속 내려가지 않고 조르주 5세 지하철역 근처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카페 '푸케'가 나온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개선문』에서 라비크가 자신을 고문했던 독일의 비밀경찰 하케를 잡기 위해 기다렸던 곳. 근처의 점멸하는 신호등을 보며, 라비크가 하케를 놓쳤을 때의 아쉬움을 떠올린다. 조르주 5세 거리를 계속 걸어 내려가면 알마 광장을 지나 알마 다리가 나온다. 라비크가 조앙 마두가 처음 만난 곳. 11월의 차가운 세느강에 몸을 던지려는 조앙을 라비크가 구한 곳. 라비크와 조앙이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던 곳. 어떤 때는 개선문에서 막쏘가를 걸어 알마 막쏘로 가기도 했다. 우리는 막쏘 광장 인근 카페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불을 밝힌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곳이라서 그랬을까. 사람도 많았고, 에스프레소도 다른 곳에 비해서는 비쌌다. 비싸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지만, 비싸서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고,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옆 자리 할머니 둘도 테이블에 책을 펼쳐 놓고 뭔가 쉬지 않고 얘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한 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한 분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도 나도 어설픈 영어였다. 프랑스에서는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이 모닝빵처럼 팔려 나갔다고 하는데, 나는 이 연세 지긋하신 분도 푸코를 아는지가 궁금했다. 요컨대 프랑스는 철학의 나라라고 하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이 많은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푸코며 데리다를 알고 있었다. 하긴 길거리 가판대에서도 푸코의 얼굴이 표지사진인 잡지를 팔고 있으니까. 두 모금 정도 남은 에스프레소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일어선다. 팔레 드 도쿄를 지나 사요궁으로 가서 에펠탑을 바라본다. 다리를 건너 에펠탑으로 가서 에펠탑 전망대에 오른다. 별 대단치도 않은 철골 구조물에 사람을 잡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행자-플라뇌르 되기
여행자는 자유롭다. 여행하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여행자는 플라뇌르가 될 수 있다. "교양인은 인생에서 돈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지식과 체험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길을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산보객이 될 수 있다. 산보를 뜻하는 프랑스어 '플라느리(flanerie)'는 서두르지 않고 순간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풍경과 구경거리들에 정신을 팔며 걷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까 플라느리를 즐기는 산보객, 다리 말해서 '플라뇌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자질과 노하우를 갖추어야 한다. 플라뇌르는 호기심을 갖고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하며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향유할 줄 알 때만 수행할 수 있는 고도로 세련된 직업이다(정수복, 같은 책, 95쪽)."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서울에서는 플라뇌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이라서가 아니다. 파리에 사는 파리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잠깐 이곳의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진입해 있는 여행자는 플라뇌르 되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여행지가 파리라면 플라뇌르 되기가 조금 더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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