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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08. 2019

파리에서의 인종차별

끝, 그리고 출발 #11

[세느강은 아름다웠지만, 파리는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었을까? 북역을 무사히 벗어나서 파리에서의 두번째날을 기분좋게 시작해 보려고 했던 우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 식당에서 불쾌한 일을 당했다. 우리가 인종차별이라고 느꼈던 일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파리에 머물렀던 일주일 동안, 이후 두차례 정도 더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한 행동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을 수 있는 단순히 '기분 나쁜'일인지, 아니면 '인종차별'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례ⓐ>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때라 손님은 없었다. 식당주인이 다가오더니 메뉴판을 던지듯이 테이블에 놓았다. 음식을 역시 던지듯이 테이블에 놓는다. 이미 우리는 식당주인의 무례한 행동에 기분이 상했고, 음식은 맛이 있을 수 없었다.


<사례ⓑ>

 쁘렝탕백화점 구경을 갔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어렵사리 화장실을 찾았는데, 화장실 앞에 줄이 쫙 서 있는 것이었다. 줄을 서려고 하자, 백화점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에게 거친 손짓을 하며, "쇼핑, 쇼핑"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물건을 사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까? 물건 사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줄을 서 있는 다른 사람들도 손에 물건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을 이용한 이후에 물건을 사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사례>ⓒ 

오르세미술관 근처 식당을 갔다.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웨이터가 다가오질 않는 것이다. 아웃사이드 테이블이기는 했지만, 식당 안쪽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웨이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웨이터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웨이터를 기다리며 나도 담배를 피웠다. 대략 3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웨이터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나왔다.


[자유, 평등, 박애가 무색하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다. 소위 말하는 인종차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당시의 우리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위의 사례들이 인종차별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객관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① 위 사례에 등장하는 식당주인, 백화점 직원, 웨이터는 누구에게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인격이 좋지 않은 사람일까? ② 프랑스 또는 파리 특유의 문화나 관습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의도치 않게 뭔가 실수를 하여 저들을 불쾌하게 한 것일까? ③ 별 거 아닌 일인데,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열등감에서 비롯한 괜한 자격지심으로 인종차별이라고 침소봉대해서 생각하는 것일까?


위 질문 ①②③에 대해 모두 '그렇다'라고 답한다면, 위 사례 ⓐⓑⓒ는 인종차별이 아닐 것이다. 세 질문에 대해 모두 '그렇다'라고 답을 하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인종차별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인종차별이라고 단정하기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의도치 않은 실수가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여행을 위해서 당시에는 '내탓이오'로 결론을 내고 잊어버리기로 했지만, 북역에서의 첫인상, 인종차별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로 인한 불쾌함, 옷을 두껍게 입어도 살을 파고드는 듯한 추위, 그로 인한 감기몸살 기운, 잔뜩 기대했던루브르박물관에서의 피곤함 등이 겹쳐서 우리의 첫 파리여행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어서 파리에서의 일정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다시는 파리에 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떠나온 런던이 그저 무척 그리웠는데(심지어 우리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갈까라는 비현실적인 모의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파리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우중충한 파리의 하늘. 우리 마음도 어두웠다]

p.s. 

1. 위에서 인종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나름대로 설정한 질문 ①②③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행위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고, 그 행위의 상대방에 의해서 그 잘못된 행위의 문제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어떤 범죄행위가 발생했을 때, 범죄행위의 상대방이 원인을 제공했을수도 있다는 말들을 듣곤 하는데, 이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생각이다. 

2. 파리를 다시는 가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2018년 1월에 파리를 다시 가게 되었다. 이 때는 인종차별이라고 의심되는 행위를 경험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번째 갔을 때, 우리는 꽤 열심히 '봉주르'와 '실부플레'를 외쳤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덕분이었거나, 운좋게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다만 일본에는 파리신드롬(파리 여행에 잔뜩 기대를 걸고 갔다가 파리 사람들의 불친절함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병원을 찾게 되는 증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고, 파리 이외의 다른 지역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 사람들은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불친절하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파리에는 확실히 불친절함의 공기가 떠다니는 것 같기는 하다.  

[이선균 주연의 영화 '끝까지 간다', 외국에서는 'HARD DAY'로 번역되었나 보다. 우리도 파리에서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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