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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Apr 02. 2019

끝, 그리고 출발 (10)

런던에서 파리로/공포의 파리 북역

2014. 12. 23.에 한국을 떠나 시작된 우리의 첫 유럽여행 일정은 런던->파리->로마->피렌체->로마->바르셀로나->런던으로 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런던 in-런던out 이라는 일정은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볼 때, 다소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행기표를 급하게 예약하면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도시와 유럽에 나오는 도시를 다르게 하는 것이 뭔가 두려워서 같게 했던 거 같다(뭐가 두려웠을까^^;;). 처음 간 유럽, 그곳에서 만난 첫 도시 런던에서의 시간이 너무도 즐거워서 결과적으로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으로 짠 것을 잘한 거라고 우리끼리는 합리화하기는 했지만...어쨌든 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정인 것은 분명하고, 이후의 유럽여행에서는 들어가는 도시와 나오는 도시를 같게 하는 일정을 짜지는 않았다.


아무튼 2014. 12. 30. 우리는 세인트팡크라스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을 떠나(어찌나 떠나기가 싫던지!) 파리로 갔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유로스타를 탄 것은 도버 해협(세계사 책에서만 보던 바로 그 해협!)을 건너는 해저열차(바다 밑으로 열차가 다닌다니!)를 타보고 싶어서였는데, 늦은 저녁 시간(대략 밤 10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파리 북역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생각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열차를 탔으니 도버해협은 볼 수도 없었고, 기차에서 당연히 바다도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만 '밤의 파리 북역'이었을뿐이다. 물론 우리도 파리 북역의 악명은 여행 준비를 하면서 사전 조사를 통해 익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북역에서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역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에 예약을 했다. 


그런데 직접 맞닥뜨린 밤 10시의 파리 북역은...우리는 몸이 얼어붙고, 뒷골이 뻣뻣해졌으며, 전신은 소름으로 뒤덮였다. 이건 정말 과장이 아니다. 유로스타에서 꽤 많은 사람이 내리는 걸 보았는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우리 숙소 방향 출구로 나왔을 때, 주위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2시간 이상 담배를 피우지 못했으니, 여느 때 같으면, 당연히 역 입구 한쪽에서 담배 한 대를 느긋하게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담배 피울 정신이 있을리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식은땀을 흘리며 앞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뒤에서 누군가 알아 듣지 못할 말로 부르고,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으며, 어둠 속에서 손이 나와 내 뒷덜미를 나꿔 채는 기분이 들었다. 


간신히 호텔에 도착은 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호텔에서는 새로운 공포가 시작됐다. 그래 이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불을 꺼놓은 것인지 프론트는 어두컴컴했다.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직원이었을까?)은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열쇠만 건네 주었다. 아니 어쩌면 눈동자가 풀려 있어서 마주치려야 마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호텔 전체에서 진동하고 있는 냄새는 또 무엇이었을까? 호스텔 류의 영화를 떠올리면서 어서 빨리 여기서(또는 그 직원에게서) 벗어나서 방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북역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아서 트렁크와 두 사람이 동시에 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트렁크 하나씩을 가지고 올라 갈 수밖에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하는 끔찍한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래도 무사히 방으로 들어왔다. 예상대로 역시 끝이 아니었다. 유리창이 어찌나 큰지 공기는 썰렁했고, 문이 잘 잠기는지도 의문이었고, 창밖의 풍경(풍경이라니!)은 뭐랄까 금세 쥐가 떼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쥐라니? 모르겠다. 어둠 속에 쓰레기가 잔뜩 보였던 거 같다. 그냥 쥐가 나타나서 유리창을 뚫고 들어올 것 같았고, 이미 방에 쥐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화장실은 쓸데없이 넓어서 추웠고, 샤워기를 틀면 녹물(혹은 핏물)이 나올 것 같아 씻을 수가 없었다(화장실을 보는 순간 영화 <추격자>의 몇 장면이 떠올랐다). 당연히 침대는 누울 만한 상태가 아니었고, 이불은 덮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런던이 그리워서 울뻔했다.


그렇게 파리 북역 인근 호텔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북역에도 해는 뜨는구나.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 나왔다. 해가 떴다고 북역이 달라졌을까? 밤의 북역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북역은 북역이었다. 역시 밤에 그랬던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트렁크를 끌고 북역으로 빠른 걸음으로 직진했다(소름, 뻣뻣, 식은땀은 전날 밤과 같았다). 북역에서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간신히 나비고를 샀고, 역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파리에서의 두 번째 숙소가 있는 루브르박물관 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식은땀, 뻣뻣, 모골 송연...버스가 왔고, 우리는 무사히 파리 북역을 벗어났다. 다신 만나지 말자, 북역아, 다시는(4년 뒤 우리는 다시 북역을 만나게 된다...).


파리에서 처음 본 곳이 북역이었으니, 파리의 첫인상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까,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회의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파리를 왜 왔을까로 시작해서 런던으로 다시 가고 싶기도 하고, 심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여행이고 뭐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파리에 왔다.


[세느강. 에펠탑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보인다. 나는 저 다리가 왜 그리도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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