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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an 03. 2024

서울구치소 다녀오는 길

20240103 수요일

1. 인덕원역에 내렸더니 비가 오나 보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온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거나 머리가 젖어 있다. 아침부터 비가 올 것 같았는데, 비가 오나 보다. 여기 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우산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출구 옆  편의점에서 가벼운 비닐우산으로 하나 샀다. 가격은 5천 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이다. 별 거 아닌, 그리고 또 쓸지 아닐지도 모르는, 비닐우산을 사는데도 어떤 색으로 살지 잠깐 고민한다. 몇 년 전, 큰형과 신천에서 술 마시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와서 형이 투명 비닐우산을 사 준 적이 있다. 그 우산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아내가 예쁘다고 좋아했던 일이 기억난다. 아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계통의 하늘색 우산으로 고른다.


2. 점심때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전영애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70이 넘으신, 괴테를 공부하신, 그래서 어쩌면 디지털 기기나 첨단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 것처럼 생각되는 선생님이 유튜브를 하시다니! 놀라움은 그저 이런저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나의 몫일뿐이다. 선생님의 채널은 그저 선생님께서 책상에 앉아 번역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기는 하지만, 차분히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은 참 아릅답다. 대단히 정적이지만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적확한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사전을 넘기는 모습, 힘들게 고른 단어를 조합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고민하는 모습. 치열하고 아름답다. 그 연세에 책상에 그리 오래 앉아 계실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오래 건강하시길!


3.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그쳤다. 비가 눈비가 되고, 눈비가 제법 굵고 따가운 싸락눈이 되더니 금방 그쳤다. 구치소를 다녀오는 길은 늘 출출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게다가 즐거운 일로 만나는 것도 아니니... 구치소에 있는 그들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데, 시원하게 말을 해 줄 수 없어서 답답하다.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과장하자면, 신의 영역이다. 법 조금 아는 변호사가 입에 쉽게 올릴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인 AI는 잘 해낼 수 있겠지(있을까?). 의뢰인들로부터 선물 받은 스타벅스 쿠폰이 제법 쌓여 있다. 너무 오래 두는 것도 부담스럽다. 빨리 써야지. 조각케이크 두 개 사고, 잔액이 남는다면 마카롱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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