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튀프론/라케스/한 권으로 읽는 문학이론/문학이론입문/진실을...
새 해에는 책을 새로 사는 것보다는 열심히 읽는 데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래서 연말에 "2024년에는 책을 조금만 살 거니까."라는 핑계로 여러 권을 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을 새로 사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갑자기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기는 책도 있고,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아두고 만지작거리던 책도 있고, 그냥 이유 없이 갑자기 읽고 싶어지는 책도 있고, 읽고 나면 뭔가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책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사자. 사놓으면, 언젠가 읽는다.
1. <에우튀프론>(플라톤/강성훈/아카넷)/<라케스>(플라톤/한경자/아카넷)
에우튀프론과 라게스는 플라톤의 책이다. 2024년부터는 매년 한 철학자를 정해서 공부할 계획을 세웠는데, 올해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주요 저작들(국가, 향연, 파이돈, 소피스트, 티마이오스 등등)은 이미 소장을 하고 있으니 가지고 있는 책부터 읽으면서 공부를 하면 좋으련만...에우튀프론과 라케스를 산 이유는 무엇인가. 공부 못 하는 사람의 핑계이겠지만, 우선 초기 저작부터 순서대로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초기 저작이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도 한 몫했고(물론 초기 저작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전혀 아니다). 에우튀프론에서는 '경건함'에 관한 논의가, 라케스에서는 '용기'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두 저작에서도 플라톤 초기 저작의 주요한 특징인 'X란 무엇인가'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논의가 진행되며, 종국에는 아포리아를 만나게 된다. 알라딘 리뷰에 라케스 번역에 대한 비판(욕)이 있어서 살짝 걱정이기는 하지만... 읽고 판단할 일이다.
2. <한 권으로 읽는 문학이론>(올리버 지몬스/임홍배/창비)/<문학이론입문>(테리이글턴/김현수/인간사랑)
문학평론(비평)에 대한 사랑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 점점 평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실현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난 이 시점에도 짝사랑은 멈추기 어렵다. 그래서 비평과 관련한 책도 늘 내 관심을 차지하고 있다. 테리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은 워낙 유명하다. 마르크스주의 문학 비평의 일단(입문서에서 '정수'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여러 문학이론을 마르크스주의자는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올리버 지몬스는 처음 듣는 저자인데, 일단 책의 내용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역자에 대한 신뢰 때문에 주저 없이 택했다. 프로이트/소쉬르/하이데거로부터 파생되는, 혹은 그들에 터 잡아서 자라나온 현대의 문학이론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책으로 보인다.
3.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조영래/창비)
조영래 변호사라고 하면 전태일 평전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 또한 놓칠 수는 없다. 조영래 변호사의 논설, 칼럼, 변론문, 일기 등이 수록된 책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 건물 앞에는 조영래 변호사의 흉상이 있는데, 그만큼 조영래 변호사는 변호사들의 표상이 될 만한 분이고, 현실의 변호사가 흉내라도 내야 할(아니 흉내 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이상적인 변호사이다. 이 시대에 조영래 변호사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부정적인 답변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겁한 질문인데, 저 시대에도 조영래 변호사처럼 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초라하고 비겁한다. 어느 시대에나 제 잇속만 챙기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고, 훌륭하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대가 변해서 이상적인 가치를 좇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간의 그릇이 딱 그 정도라서 좋은 일 하면서 착하게 살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쨌든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가짜(가상)가 진짜(이데아)를 흉내라도 내 보려면, 이데아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뒤늦게/이제라도 사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