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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Nov 15. 2022

무식하고 용감하게 음악하는 애를  다시는 무시하지 마라

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 《조류》 작업 기록 ⑥

수 많은 굼벵이들 앞에서 주름 좀 잡아보겠다.

에헴. 내 허리 밑에 생긴 예쁜 주-름 자랑.

By. 뒷발 한 개가 나올랑 말랑하는 올챙이가...




2020년 3월, 미디 작곡을 처음 배웠다. 어떤 곡을 만들고 싶냐고 레슨 쌤이 물었을 때 나는 뒷통수를 치는 소리들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거 같다. 그 전까지는 피아노만 칠 줄 알았다. 아, 노래방에서 서너시간 동안 혼자 놀아도 지치지 않고 록을 선곡할 수 있는 그런 육신을 가지고 있긴 했다(요즘엔 그럴 수 있어도 안 그럴 것이다... 코로나로부터 목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미디를 했냐. 그냥… 참을 수 없어서? 사실 내 첫 번째 선생님은 키라라라는 음악가인데, 그분이 리믹스한 곡 중에 러브송을 듣고 갑자기 신스를 사고 작곡을 시작했다. 

러브송(KIRARA Remix)

이 얘기를 그분한테도 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메커니즘은 알 수가 없다. 그냥 당장 음을 만들고 배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프리랜서 2년차에 접어들던 시절이었다. 돈도 없고 일은 벌려가는 와중이었으나 그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이유로 맥북을 샀다. 아, 당연히 중고로(수리비 들인걸 생각하면 그냥 새 걸 샀어도 됐을듯). 


시간을 내고 음악과 친해지는 만큼 수익을 포기한 건 당연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이 될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그저 막막한 빈 페이지 같은 상태였어도 좋았다. 내가 별 다른 이유 없이 무언가에 달려가는, 그 상태 자체에 취해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랑 이외에 그렇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는 그렇게 많이 오지 않으니까. 그래, 꿈이란 단어가 있지. 꿈 같았다고 표현하면 되겠다. 


내가 브런치를 쓴다고 이런 걸 다 해본다. 참.... 


그렇게 꿈 속에 머문지 3년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서, 어느 한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힌트를 얻고 그 전과 다른 차원으로 음악에 접근할 때가 많다. 아마 내가 여태까지 경험한 ‘그렇구나. 이게 그렇게 작동하는 거였구나’의 시간보다 앞으로 경험할 ‘그렇구나’의 시간이 더 길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발 한 개 정도가 나왔을지 모르는 올챙이인 나는,
종종 과거의 나를 무시했다. 그걸 최근 알았다.




지난 주 책에 넣을 3번 트랙인 겨울의 겨울을 다시 복구 하면서 내가 과거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다. ‘소리를 더 분명하게 들리게 해야지.’ '미드-사이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잔향 길이가 너무 길어.' 그러면서 지금의 논리로 그때의 소리들을 다듬어 봤는데, 안 되더라. 물론 완벽한 곡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내가 만든 그 느낌이 더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나는 아는 게 없는만큼 아는 게 없는대로 그저 느낌으로 만드는 인간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아는 것 없이 음악을 만들줄 아는 애가 내 안에 있었네. 의지만으로 모든 걸 하던 애가. 지금이야 내 일도 어느정도 안정됐지만, 그때 난 진짜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도 음악을 하고 있었잖아. 난 그것도 모르고 걔를 무시하고… 날 가장 잘 아는 동료이면서도 엄청난 의지와 느낌을 가진 애였는데.’


그런 깨달음을 얻고선, 나는 그간 쌓은 얄팍한 지식으로 소리를 다듬는 걸 멈췄다. 그때의 느낌을 보존하되 현실적으로 좋은 음악으로 나오게끔 조화를 만드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야 방향이 좀 잡히더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의 무서움을 이번에 느꼈다. 


물론 1년 뒤의 나는 이 글을 보면서 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지가 뭘 얼마나 안다고. 하지만 그건 걔의 코웃음이지. 내가 알 바 아니다. 뭐,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웃음에 애정이 더 묻어 있을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고. 혼자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늘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근데 또 나랑 어느정도 감각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동료가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질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만났을 땐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지면 진짜 감감무소식인 사람이라서 연락을 잘 하는 편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성격이라면 더더욱 과거의 창작하는 자신과 잘 지내야 할 필요성이 있겠지. 




하, 난 작업을 하면서 이런 걸 알아가는 게 너무 좋다.
나한테 이런 거 알려주는 이 작업도 좋고.

음악이 너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야. 더 배울래.




지금은 겨울의 겨울을 믹싱중이다. '텀블벅 올리기 전까지 이걸 어떻게 다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올려 놓고도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바심에 일을 그르치지 말고 마감에 맞춰서 잘 해내보려고.


지난 주엔 인쇄소를 컨택하고 사양을 어느정도 정해서 견적도 뽑았다. 디자인도 거의 다 나왔고. 펀딩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소개글을 쓰고나면 상세페이지용 이미지 작업을 시작해도 되겠다. 하, 정말 이제 코앞이다. 


음악을 책에 올린다는게 참... 내 마음만큼 사람들이 봐줄까. 들어줄까 싶기도 하고. 벌스-프리코러스-코러스 형식의 가사가 충실히 들어간 노래를 기대한 사람들은 어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싶고. 뭐, 그래도. 내 마음을 다 해야지. 별 수 있나. 별 수 없다. 그냥 만드는 거다. 과거의 뒷통수를 치고 싶던 나와 함께, 책에 음악을 넣고 싶던 나와 함께, 나를 모르는 세상에 애틋한 복수를 하고 싶은 내 지금과 함께, 뭐, 그냥, 한다.


그럼,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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