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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Dec 25. 2020

독립출판 제작 그 이후의 이야기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2개월 만의 소식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을 출간한지 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북페어를 나갔고, 입고서점을 늘렸고, 몇 곳은 재입고를 했으며, 코로나가 주춤했을 때는 강연도 다녔습니다. 좋은 일들이지요. 그런데 그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일이 바빠졌기 때문인데요. 연말에는 시간이 남아 '브런치에 올렸던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작업기> 문을 확실히 닫고 싶다'는 제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니까, 제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삼아 지난 시간을 느긋하게 찬찬히 돌아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제 책을 읽고
'사람들이 책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는 후기 글을 써 주었습니다.

사실 그 글에는 제 책의 어느 부분이 좋았으며, 무엇을 느꼈는지도 써 있었지만 다른 것보다 그 한 문장에 꽂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내가 독립출판을 하면서 정말 좋아하는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닿고 싶은 순간은 '읽지 않던 사람이 읽음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에 있구나.


제주도 북페어에서 누군가에게 팔았던 책이 깨달음이 되어 돌아온 겁니다.

11월 초, 제주도는 생각보다 따뜻했고, 저는 그때 제주도의 독립서점 두 곳에도 15권의 책을 입고했었죠. 라바북스에 5권, 그리고서점에 10권. 특히 그리고서점 사장님은 이사 준비로 바쁜데도 따님을 시켜 책을 받아가셨습니다. 그때 책을 막 낸 직후였는데,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또 페어에 함께 참여했던 언제라도북스에서는 이후에 입고를 받아 주기도 하셨고요. 급하게 내려가서 책만 팔고 오는 자리여서, 그때는 경황이 없이 지나갔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래요. 서점 사장님들 참 힘드실 텐데도, 자리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물론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요). 가끔씩 재입고를 요청 받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어요. 도대체 어떻게 팔리고 있는 걸까 싶고. 입고제안을 많이 거절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는데(저도 어디선가는 거절을 당하고) 새로 입고를 받아 주시는 서점 사장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덕분에 어제도 또 한 곳의 서점(서촌그책방)에 새로 입고를 하고, 또 다른 한 곳(커넥티드북스토어)에는 재입고를 했습니다. 이제 독자 분들이 더 많은 곳에서 제 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로, 지속성 있게 할 일을 하면서 또 만나고, 만나게 하고, 그러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책이 더 많은 곳에서 독자를 만나고 그 반응이 제게 돌아오면, 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글을 올리곤 합니다. 그러면 주위에서는 '아, 책의 반응이 좋구나. 멋지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로도 해주시죠. 그런 칭찬을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제가 인천 동산고에 가서 독립출판 수업을 했을 때였어요. 네, 저희 집에서 왕복으로 6시간 걸리는... 그 곳이 맞습니다.



독립출판물에 대해 알려달라.

동산고 독서논술반 선생님이 DM으로 주신 요청이었습니다. 2회에 나누어서 5시간 정도를 진행했죠. 저는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나일까? 선생님에게 이유는 딱히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독립출판물 태그를 제가 프로필에 전략적으로 잘 달아놔서 그냥 눈에 띄었고, 피드를 보니 '알려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연락하신 것 같아요.


섭외 하시는 분은 그럴 수 있지만 저는 왕복 6시간을 2회씩 갈 가치가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 밖에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1회차에는 제 소개와 독립출판 작가 그리고 프리랜서의 삶을 주제로 이야기 했어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특히 지금 얻고 있는 결과물 중심으로 기승전결을 짜서 보여주었죠. 일부러 강조했어요. 직장생활 없이 2년차 프리랜서 에디터로 자리 잡아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산다고. 독립출판 작가로 세 권의 책을 내고 엄마에게 자랑거리가 된 건 그 결과라고.


아이들은 독립출판을 모르고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높은데다가, 기본적으로 저에 대한 신뢰도도 없잖아요. 저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5시간 동안 왜 들어야 하는지, 그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선택하게 했어요. 다음 회차에는 독립출판 작가의 얘기를 듣고 싶은지, 프리랜서 에디터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요.


6명의 친구는 독립출판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4명은 에디터로서의 글쓰기를 듣고 싶어 했어요. 저는 3:2의 비율로 준비를 해 오겠다고 했죠. 그리고 그 다음 회차에는 일부러 개성이 넘치는 독립출판물만 골라서 들고 갔어요. 제가 100번 얘기해 봐야 보는 것만 못 하니까요.


누가 보면 설정샷인 줄 알겠지만... 아무튼 다들 정말 신기해 하면서 봤습니다. 후후후. 그 맘 압니다.


반응은 당연히 좋았고, 저도 나름의 수확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남자 고등학생에게 94년산 박민주란 어떤 느낌일지 걱정이 되었는데, 이해가 되기도 하고 표현 방식이 유쾌하다면서 좋게 평가를 해 줘서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한 선생님도 수업을 들으러 와서 제 책을 읽고 마음이 뭉클해 졌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독자님께 작물을 선물 받았어요. 그 선생님이 읽기에 94년산 박민주의 고구마 드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군고구마를 선물해 주셨거든요. 그때 참 마음이 울컥해서 인스타그램에 길게 기록을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엔 포장지를 좀 넉넉히 사 놓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포장지를 책으로 뽑은 분량의 5분의 3정도만 사 놨는데, 어느정도 떨어져서 미리 포장을 다 해봤더니 50권 정도 포장이 되더라고요. 어쩐지 포장을 하면서 '이렇게 포장하고 나니까 갑자기 금방 다 나가버릴 거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나서, 어제 10권이 나가고. 오늘 20권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랑입니다.


그치만 제 포장지는 좀 비싼 편이어서 처음에 살 때 많이 살 생각이 잘 안들더라고요. 내심 '에이... 뭐 금방 나가겠어...?' 하면서도 '아, 근데 1년 만에 다 없어져서 이런 마음이 민망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맞아요. 볼멘소리 하듯 하는, 또 자랑이고.





앞으로 멀어서 가까워지는... 일정들

북페어는 두 곳 정도 예정되어 있습니다(이 코로나 시대에도 북페어를 눈치를 봐가며 준비하고, 심해지면 미루고 미루면서도 꼭 열고 싶어하시는 서점 사장님들 정말 감사하고). 1월 말에 독산동에서 한 번.

2월에 을지로 4가역에서 한 번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가방 성수동 팝업 스토어에도 1월달 테마북 중 하나로 선정 되었다는데요.

선정해주신 올오어낫싱 책방 사장님께 감사하구요. 주제가 다짐이었다고 하네요. 어떤 부분 때문인지 짐작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추천사를 읽으러 어서 달려가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제가 사진도 찍고 그렇게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칩거'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참...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집에서 아무리 맛있는 걸 해먹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막. 집과도 적당히 멀어져야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란 걸 배워갑니다. 그런데 코로나한테 그런 거 그만 배우고 싶습니다. 흑흑, 그러려면 칩거를 더 열심히, 건강하게 하는 수 밖에 없네요. 모두들 코로나와의 싸움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멀어서 가까워지는 작업기는 마무리 하고 다음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작업기의 문을 닫을 생각이 들었던 건, 다음 책의 주제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걸로 해야겠네.'라고 결심이 섰기 때문이죠. 그러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음 책 작업을 더 많이 신경 쓰게 됩니다. 비록 제가 지금 다른 작가님들 책을 작업 중이라서 본격적으로 들어갈 순 없지만요. 아무튼 제 마음을 막을 수는 없고, 새로운 기둥을 세울 거라면 제대로 마감 된 곳에 세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작업기의 문을 닫아봅니다. 작업기를 닫는다고 해서 작업이 끝나는 건 아니고, 여전히 입고도 하고 SNS도 하고 북페어도 갈 겁니다. 그러나 브런치에는 다음 책에 대한 생각이든, 제 다른 작품이든, 제가 일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나 편집자로서의 생각들을 올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을 책임지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머물러 있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것도 같고요. 저도 그런 사람으로는 작가 활동을 오래 못할 거 같고요. 작업기에서 멀어지고, 저는 다른 작업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지지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물 밑에서도 물 위에서도 움직이러 갑니다.


그럼 우리는 흘러가는 물 위에서 다시 만나요.





| 작업기를 읽었던 분들께 마지막으로 또 드리는 말씀

독립출판의 형태는 독립출판 제작자가 설정한 목표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고민한 모든 것들, 제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독립출판 작가들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르지도 않겠지만,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 작업기를 모든 독립출판에 그대로 대입해보기보다는 그저 민주라는 한 인간의 독립출판 케이스라는 점을 생각해주시고, 저와 같은 질문을 했던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혹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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